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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교중 May 24. 2021

외국인 아내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아내가 최근 들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부쩍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아내 말로는 어릴 적부터 K팝과 한국 예능을 좋아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살아보니 미디어에서 보았던 한국과 삶에서 느껴지는 한국은 많이 다르다고 했다. 갑작스레 한국 대사가 된 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우리나라에 대해 알려줘야 할까 고민하다가 함께 영화를 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조선시대 사극부터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여러 영화 중에 아내가 원하는 영화를 고르도록 했다. 아내는 몇 분간 고민하더니 '태극기 휘날리며'를 골랐다. 지금도 분단을 겪고 있고 전 세계 TV에 자주 등장하는 김정은이 통치하는 나라를 위에 두고 사는 한국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궁금해했다. 특히나 김정남 암살사건이 일어난 곳이 말레이시아라 북한은 말레이시아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사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엄밀히 말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휴먼 드라마이다. 전쟁이 어떻게 발발했고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정보를 세세하게 알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불과 70여 년 전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포근한 침대에 누워 비명과 포탄으로 난무한 영화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화면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점점 몰입하며 영화에 집중하였다. 지금 보면 영화적 재미를 위해 다소 과장된 표현이나 전개가 보였지만, 아내는 화면 속에서 사람들이 포탄에 맞아 갈가리 찢기고 죽어나갈 때마다 나지막이 탄성을 질렀다. 결국 아내는 영화 중간에 잠시 쉬자고 했다.


아내는 나를 바라보며 자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쟁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하는 건데, 왜 똑같은 나라에서 서로 저렇게 죽이고 미워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이념 갈등과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이권 다툼에 대해서 설명했지만, 아내는 그건 한 집에서 가족끼리 서로 죽여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었지만 외국인인 그녀의 입을 통해 그 말을 들으니 무언가 기분이 묘했다.


우리는 다시 영화를 재생하고 결국 끝까지 영화를 마쳤다. 자신을 위해 죽은 형의 유골을 바라보며 오열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아내는 결국 울음을 참지 못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거진 평생을 살아와 너무나도 익숙했던 것들을 아내의 눈으로 바라보면 한 없이 신기해진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살인, 방화, 학살 등이 난무했던 70년 전의 기록은 2006년 나의 눈엔 그저 발전된 한국 영화 기술이 만들어낸 스펙터클한 전쟁영화로만 생각하게 하였다. 하지만 아내의 눈으로 바라보자 영화는 내게 다른 경험을 보여주었다. 아내는 이 일을 겪은 분들이 아직도 많이 살아 있으며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사건이라는 사실에 유감을 표했다.


곧 6월이 다가온다. 한국 전쟁 71주년을 맞이하는 달이다. 이 날이 오면 아내와 함께 현충원을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나도 아내의 눈으로 한국전쟁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게 지금 우리를 있게 만든 분들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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