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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싸 Jan 11. 2024

간 사람은 간 사람이고 너는 네 인생 살아야지

셰익스피어 <햄릿>

아, 저 여인 안타까워서 어떡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라고 하는 햄릿을 읽었다.

요즘 가뜩이나 다운되어 있는데 왜 하필 비극을 골랐을까. 그것은 무수히 많은 세계문학 책이 꽂힌 서가 앞에서, 너도 당해보라는 듯 햄릿증후군(결정장애)이 나에게도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다. 쉽게 책을 고르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어떤 이끌림으로 인해 ‘가장 얇은’ 이 책을 고르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 책을 보고 너만이라도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 하는 햄릿의 부름이 아니었을까. 마치 햄릿이 아버지의 원혼 때문에 인생을 망가뜨린 것처럼…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오 빌어먹을 햄릿이여. 나는 기도 열심히 하고 자유로워지겠노라.


이 책을 보면서 이미 20여 년 전에 고인이 되신 내 아버지가 많이 생각이 났다. 사실 나의 아버지도 결정적인 사인은 뇌출혈이었으나, 그 출발점에는 내가 지금도 원수로 여기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이미 몇십 년이 지나고, 이제는 용서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항상 다짐하지만, 머리로 용서하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과는 달리 그 감정은 오롯이 남아서 희미하게나마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나도 한때는 햄릿처럼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고 이를 갈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 보았기 때문에 햄릿의 그 마음과 복수심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심지어 햄릿은 아버지가 유령으로 나타나서 억울하다며 복수를 해달라고 쫓아다니는 상황이니, 나였어도 그냥 외면하고 내 삶을 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귀신으로 안 나타나고 가끔 꿈속에서 안부만 전해준 내 아버지에게 새삼 감사를 드린다.


이야기의 초반에는 재미있는 표현이 너무 많아서 그런 문장들을 찾아 메모하며 낄낄거렸다. 내가 사랑하는 책 다섯 가지 안에 드는 <돈키호테>도 정말 재미있는 문장들이 많아서 읽는 내내 너무 즐거웠는데, 햄릿도 사실 비극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보물 같은 문장들이 가득한 건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장인데,



“아버지완 생판 다른 아버지의 동생과 한 달도 못되어 쓰라려 불그레한 그녀의 눈에서 순 거짓 눈물의 소금기가 가시기도 전에 결혼했어. - 오 최악의 속도로다. 그처럼 민첩하게 근친상간 침실로 내닫다니!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의 형제와 결혼식을 올린 어머니를 이야기하며)“절약이지, 절약이야, 호레이쇼. 혼례상에 장례식 때 구운 고기 차갑게 내놓았지.”


“만약에 틀리면 여기에서 이걸 떼어 내소서.” (자기 머리와 어깨를 가리킨다.) - 목을 잘라 죽이라는 뜻.



등등등… 나의(나만) 유머코드가 이 시대와 맞는가 보다. 역시 나는 고풍스럽기 그지없다. 아무튼, 아쉽게도 후반으로 갈수록 이런 표현들은 사라지고 점점 내용이 무거워진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햄릿은 사랑하는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자신이 형제에게 독살당했으니 복수를 해달라는 말에 자신의 삶을 버리고 복수에 매진하다가 모든 것을 잃고 스스로도 목숨을 잃고 만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가슴 아프고 속상한 일들이 햄릿이라는 인물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복수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미친 척을 하며 사랑했던 사람에게 수녀가 되라며 모질게 대하고(자신은 복수를 해야 하는 운명으로 인해 불행해질 것이니 당신은 나를 잊고 새로운 인생을 사시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내가 가슴이 아프니 차라리 수녀원으로 가시오… 뭐 이런 마음 아니었을까. 나 왜 이런 바보 같은 태도를 이해하고 있지? 흠흠!), 자신의 현실과 삶 모두 다 잃어버리고 결국은 스스로의 행동으로 인해 아버지와 누이를 잃은 이의 복수의 대상이 되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참 마음 아프고 씁쓸했다.  


무거운 가슴으로 책을 덮고, 가슴 위에 무겁게 올라앉아 있던 고양이를 치우며 이런 말이 떠올랐다. “간 사람은 간 사람이고 너는 네 인생 살아야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나에게 어른들이 하던 이야기였다. 당시에는 내 속을 어떻게 아냐며 귓등으로도 안 들었는데, 시간이 흘러 나도 나이를 먹고 보니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내 입으로 나왔다. 나의 소중한 인생.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기 위해 애쓰며 살기도 모자란 시간. 그러니 더 빛나는 삶이 되도록 애쓰며 살아야지. 복수니 원망이니 다 부질없다. 그런 것이 나를 갉아먹고 더 망가뜨린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누리며 살아보자.


행복하고 가슴 뛰는 일들만 생각하며 살기에도 인생의 시간은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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