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하우스, 너의 죄를 털어놓지 마

로버트 에거스 감독. 라이트하우스

by 백승권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욕망 중 하나는 비밀에 대한 발설이다. 홀로 책임지지 않으려는 외롭지 않으려는 어둠 속의 미아가 되지 않으려는 두려움이 죄책감이 압박감이 나 외에 다른, 귀가 달린 생명체를 찾아 헤맨다. 내 이야길 들어줘. 내 죄의 청취자가 되어줘. 내 기억과 같은 사건을 너도 기억해줘. 그리고, 나를 용서해 줘.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누구나 궁지에 몰리면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고. 내가 특별한 미친놈이거나 악귀가 아니라고. 멀고 먼 외딴섬의 등대 노동자로 간 에프라임 윈슬로우(로버트 패틴슨)에겐 어둠과 광기, 두려움과 불안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계속 짓누르고 두들기고 자극하며 끄집어낸 자가 등대관리 선임자 토머스 웨이크(윌리엄 데포)였다. 둘은 처음 만나고 수날동안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갈등과 반목을 반복한다. 불을 켜놔도 저녁 식사 자리는 암흑보다 어두웠고 둘의 대화는 심해 속의 화산 같았다. 더러운 몰골과 불결한 환경, 무례한 지시와 의도적인 괴롭힘 속에서 에프라임은 토머스에게 날을 세우고 내면의 어둠을 하나둘 고백한다. 만취하며 뒹굴면서도 토머스는 아무 관심 없으니 말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에프라임에게 이렇게 헝클어진 상태, 취해야만 그나마 대화가 부드러워지는 상황이란 고해성사를 하기에 최적의 조건. 에프라임은 혼잣말처럼 주절거린다. 사람을 죽인 적 있다고.


토머스가 우정 어린 포옹을 하며 그래, 그동안 숨기고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니, 이 외딴곳에서 우리 둘이 잘 지내보자, 그동안 못되게 굴어서 미안하다. 이렇게 사과와 감동 어린 대사를 하며 맺었을 리 없다. 밤이 끝나고 자욱한 낮이 다시 닥치며 둘의 관계는 다시 점액질과 갯벌의 점토와 쓰레기와 출처 불명의 살점으로 뒤덮인 듯한 고어gore로 변한다. 애초 당장 서로가 서로를 바다에 밀거나 등대 위에서 떨어뜨리거나 저녁 재료로 칼질한다고 해도 납득 가능할 정도로 험악한 관계였다. 여기에 인어의 나체와 육체적 정욕이 뒤섞인 환상, 새를 죽이면 저주가 닥친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피칠갑으로 만든 것, 랍스터 그물에서 발견한 시체, 아무리 틀어도 쏟아지 더러운 물, 하늘까지 집어삼킬 듯한 망망의 파도, 날조한 거짓말의 역사, 자신의 여정에 대한 오랜 기만, 폭발할 듯한 감정, 육체, 그리고 미쳐버릴 듯한 고립감, 바다를 향한 높고 강력한 불빛, 등대라는 권력에 대한 탐닉과 근원을 알 수 없는 집착, 여기는 산 자들의 시공간일 수 없었다. 에프라임과 토머스는 각자의 악몽 속에서 끊임없이 착시와 고통을 겪다가 영혼의 쌍생아와 마주한 이들 같았다. 다른 세계, 다른 언어, 끊임없는 격돌, 에프라임은 토머스의 권력을 원했고 살인으로 쟁취한다. 그리고 빛의 심판과 저주의 실현에 의해 온몸이 갈기갈기 부서진다.


죄인의 시간은 되돌려지지 않는다. 아무리 벗어나고 도망쳐도 시간을 바꿀 수 없으니, 영영 죄에 잠식당한다. 죄책감이 숙주를 뒤덮고 허상에 휩싸여 스스로 비참하게 죽어간다. 광기와 공포는 공기보다 가깝고 낮보다 길며 밤보다 어둡다. 토머스가 지키던 왕국을 차지하려던 에프라임은 이방인의 신분을 잊고 선왕의 권력을 탐한다. 애초 토머스는 빛의 독점자, 등대 그 자체였는데. 에프라임은 길 잃은 자를 인도하는 착하고 찬란한 빛을 차지하려 했고 저지당할수록 욕망은 강해졌다. 감당하지 못한다는 진실은 감당하지 못하고 나서야 뜨겁게 타오르며 찾아온다. 죽은 자들의 복수가 시작된다. 살을 뜯고 피를 마시고 눈을 파먹는다. 바다를 향한 눈빛을 상실당한다. 죽어서도 바다를 볼 자격을 박탈당한다. 바다 위에서 등대는 가장 높은 빛이었고 바다 위에서 등대 밑은 가장 낮은 어둠이었다. 천국은 지옥을 숙주 삼아 유지되고 있었다. 지옥의 수레바퀴를 돌리던 인간들은 모조리 스스로의 생명을 제물로 바쳤다. 등대는 인간의 피를 마시며 풍랑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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