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깊어지면 바닥의 소리가 들린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소리들,
바닥에 떨어뜨린 후 줍지 않은 소리들,
바닥에 떨어뜨리고 쌓이고 쌓여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던, 하지만
존재하는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웅크리고 있던 소리들이, 들린다.
발견의 기쁨이 아니다.
이건 차라리 뒤늦은 통증에 가깝다.
저 사람도 저렇게 힘들었구나.
저 사람도 (나와) 저렇게
(또 저만큼) 다르지 않았구나.
어둠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얻게 된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던 깊은 곳의,
바닥에 눌려 있던
말하지 않았던 진실들.
끝까지 감춰져 있는 게 차라리 나았을 거야,
라는 의견은 더 이상 소용없다.
대화가 길어지며 반복되는 단어와 문장들,
소모되는 감정들, 붉어지는 눈빛,
토로, 울분, 원망,
이렇게 '어쩔 수 없게' 된 원인들,
시작점에 대해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조차 없는 이유들,
누군가는 다치고
누군가는 기억하고
누군가는 대신 힘들다
어떤 게 '효율적'인지 모르겠다.
효율이 이럴 때 필요한 건지 모르겠다.
다수가 조금씩 힘든 게 맞는지
소수가 더 많이 짊어지는 게 맞는지
애초 판도라의 상자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 게 맞았는지
모두가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상황을
이렇게 오랫동안 앓는 소리를 틀어막아가며
유지하는 게 과연 누굴 위한 건지.
공익이라는 게 있기나 한 건지.
우리의 대화는 갈라지고 있었다.
수많은 균열을 만들고 깊어지고 아렸다.
우리가 지나온 경험만큼
회복은 기적같이 찾아왔다.
서로를 마주한 채 나누는 어떤 대화도
이젠 더 이상 어떤 방식으로도
우릴 해칠 수 없다는 견고한 믿음
입맞춤, 포옹, 떼지 않는 뺨,
달려오는 도로시의 양 팔이
우리 둘을 덥석 안으며 완성되는
하나의 그림자.
하나였다가 둘이었다가 셋이었다가
셋이 하나가 되는
완전함과 새로운 온전함.
이 구도를 흔들고 싶지 않다.
하나의 셋, 셋의 하나를 철저하게 보호하고 싶다.
우린 이 안에서 서로를 키울 것이고
스스로 자랄 것이며 서로의 생을 우리의 생으로,
우리의 생에서 각자의 생으로,
생장의 범위와 부피,
영토와 고도를 확장시킬 것이다.
가족이 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일부 책들은 이런 관계를
가족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