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흑인들과 싸우는 흑인

조지 C. 울프 감독.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by 백승권






인종을 초월하고 모든 동시대 세대들은 조상의 유산과 한계, 과오와 싸우게 된다. 가난과 저학력, 폭력과 마약 속에서 자란 백인들의 총구는 나이를 먹어가며 자연스럽게 부모를 향하게 된다. 같은 조건들의 흑인들은 조금 다르다. 싸워야 할 대상이 하나 더 있다. 백인들, 백인이 이미 쥐고 있는 세상, 백인이 모든 룰과 기준, 시스템을 만들어 그 틀 안에 가둔 세상. 같은 악조건을 뚫고 어른으로 살아남아도 열악한 처지는 바뀌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사슬에 완전히 묶여 눈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흑인들이 백인들의 덫과 사슬 속에서 발버둥 치는 사이, 애초 흑인들이 향하던 의자는 백인들에 의해 사라진다. 백인은 흑인들의 자유만 앗아간 게 아니다. 재능과 기회, 그로 인한 집단의 미래와 문화까지 철저히 말살했다. 끝없는 좌절과 굴종을 통해 이를 학습한 흑인들은 애초 재능을 펼칠 기회를 바라지 않는다. 겨우 발을 딛고 한 움큼 쥐게 된 초라한 자유와 권리를 마저 잃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알아서 움츠린다. 모든 흑인들이 이러는 건 아니다. 래비(채드윅 보스만)는 달랐다.


음악과 패션을 사랑하는 흑인 청년 레비(채드윅 보스만)는 마 레이니(비올라 데이비스)가 이끄는 밴드 단원들과 달랐다. 확신과 패기에 가득 차 있었다. 청년기를 지난 세대가 받아들이기엔 충동적이고 무모해 보였고 무엇보다 한없이 무례하게 받아들여졌다. 흑인으로 구성된 같은 밴드 단원 어느 누구도 레비의 음악적 재능과 야망에 신경 쓰지 않았다. 비웃고 빈정대기 바빴다. 그들 모두 재능으로 환경의 벽을 뚫지 못한 채 지하에 갇힌 자들처럼 보였다. 심지어 블루스를 종교의 반열에 올린 마 레이니조차 레비의 새로운 시도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마에겐 뮤지션 후배가 아닌 병풍이 필요했다. 누가 뭐 래든 레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서 스튜디오에서 트렌디한 신곡을 녹음해 독립할 생각에 영혼이 잠식당한 듯 보였다. 스튜디오 대표가 레비의 작곡을 눈여겨봤고 레비에겐 이게 유일한 동아줄이자 미래의 전부였다. 레비는 그의 인정을 받아 하루빨리 음반을 낼 생각에 안절부절못했다. 곡 전체를 컨트롤할 날이 코앞인데 유명 여가수의 세션은 성에 차지 않았다. 레비는 온갖 핀잔과 시비를 당하며 연습을 거부한다. 당장이라도 이 지하 연습실의 문을 부수고 나가고 싶었지만 문을 열리지 않았고 빛은 들어오지 않았다. 레비는 초조했다. 마의 녹음이 마칠 때까지 스튜디오 대표는 답이 없었다. 레비는 재촉한다. 그리고 기대가 무너진다. 피부색이라는 낙인. 백인 스튜디오 대표는 애초 흑인 청년에게 녹음실 문을 열어줄 생각이 없었다. 레비는 단순히 한번 거절당한 게 아니었다. 모든 계획이 차단당했고 (부모를 끔찍하게 앗아간) 백인에게 다시 무시당했으며 흑인 윗세대에게 처절하게 비웃음 당한 거였다. 끓어오르는 분노가 사지를 휘감았다. 주체할 수 없었다.


레비의 흉기가 누군가의 살갗을 후빈다. 빛과 출구 없는 지하에서 시종일관 한치의 양보도 없던 대립은 붉은 피를 와락 쏟고 나서야 멈춘다. 그 시간 마는 파리처럼 앞발을 비비며 사정사정하던 백인 매니저를 뒤로 한채 어린 흑인 소년과 함께 다음 행선지로 향하고 있었다. 마는 이미 레비의 돌출 행동을 참지 못하고 밴드에서 해고된 상태였다. 추상같은 호령으로 백인 남성들의 숨통을 휘어잡고 시대의 추앙을 받던 흑인 여가수가 녹음실에서 고고히 멀어지는 동안 먼지와 어둠 속에서 서로를 향해 짖던 흑인 남성들은 죽거나 울부짖고 있었다. 모든 흑인들이 나이와 성별마저 무시된 채 피부색이라는 하나의 유대감으로 이해될 필요는 없다. 모든 세대와 인간들이 그렇듯, 각자의 선택과 욕망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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