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모리 타츠시 감독. 마더
영화가 아동학대를 전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격적이고 자극적일수록 체류시간이 늘고 입소문이 돌고 결국 영화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효과를 위한. 일본 영화 특유의 필름 카메라 색감으로 담은 동네, 도심, 풍경과 일상들, 심하게 눈부신 낮과 더 밝은 표정, 이걸 행복한 삶을 증명하는 방식이라고 여기는 건 아닐까 생각 들 정도로 너무 밝았다. 무릎이 깨진 아이가 흘리는 피를 웃으며 혀로 핥았을 때부터 미묘했다. 자식의 고통을 즐기며 음미하는 어미의 은유인가. 그때부터 아들 슈헤이(오쿠다이라 다이켼)는 학교에 가지 못한다. 엄마 미스미는 노동으로 돈 벌기를 그만둔다. 미스미의 엄마와 동생은 그녀에게 금전 지원을 포기한다. 미스미(나가사와 마사미)의 모든 돈은 파칭코 기계에 들어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슈헤이의 (같이 살지 않는) 아빠로 추정되는 사람은 있다. 그에게 매월 적은 돈을 지원받는다. 정부 지원금도 있다. 하지만 모두 파칭코 기계로 들어간다. 기계는 돈을 뱉지 않는다.
미스미는 성실한 성인이 아니다. 상식적인 부모도 아니다. 정신 나간 모습들을 보자면 차라리 범죄자에 가깝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모든 생활비를 오락실 도박으로 탕진하며, 한 푼도 없는 아이를 쓰레기밖에 없는 빈집에 방치하고 (유흥에 빠져) 연락 없이 몇 주 동안 들어오지 않는다. 싱글맘의 양육 부담을 줄여 헛된 죽음을 막으려는 공무원들의 손길도 마다한다. 슈헤이를 먹이지도 입히지도 씻기지도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다른 시설로 옮기려는 모든 시도를 차단한다. 슈헤이는 그 시기에 이미 죽었다. 숨이 더 길게 붙어 있었지만 정신과 영혼은 그때 이미 가장 가까운 양육자들의 포기로 인해 살해당했다. 가족이 포기한 어른 여자의 손에서 어떤 돌봄도 없이 슈헤이는 이미 죽었고 더 깊은 죽음으로 끌려간다. 지옥은 추상의 개념이 아니었다. 슈헤이의 살아있는 지옥은 엄마 미스미였다. 살리지도 죽이지도 않은 채 곁에서 피를 빠는 언데드.
강제로 학습된 연민은 합리화를 위한 촉매제다. 기회가 있었음에도, 슈헤이는 미스미를 떠나지 않는다. 미스미가 원하는 데로 슬픈 척을 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구걸을 한다. 구걸에 성공하지 못하면 미스미는 계속 윽박지른다. 방탕한 미스미는 료를 만나 동거한다. 아이가 함께 있는 공간에서 둘은 교미한다. 방탕한 여자가 더 미친놈을 만나 사기를 치러 다닌다. 죄책감은 보통 사람들의 판타지다. 그들은 사기 대상을 칼로 찌르고 도망친다. 료(아베 사다오)는 사채를 쓰고 미스미를 버린다. 미스미는 임신 상태였다. 미스미와 쇼헤이, 뱃속의 아이는 세상에 나와 한겨울 노숙자가 된다. 거리에서 얼어 죽기 전, 공무원들이 작은 거주공간을 마련해준다. 미스미가 낳은 둘째,(생물학적으로) 료의 딸, 쇼헤이의 여동생 이름은 후유카, 후유카(아사다 하로)와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다. 늘 배가 고프고 때 묻고 허름한 옷차림에 늘 힘이 없다. 빈털털이 료가 돌아오고 다시 떠난다. 슈헤이는 미스미가 원하는 대로 취직한 곳에서 돈을 훔치다 사장에게 잡힌다. 사장은 슈헤이의 가족을 딱하게 여기고, 미스미는 그 기회를 타 사장을 유혹한다. 미스미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수요와 공급이 뒤엉켜있었고 그 찌꺼기 속에서 뒹굴며 미스미와 미스미의 아이들은 발버둥 치고 있었다. 돈은 늘 없었고 미스미는 슈헤이에게 살인을 교사한다.
미스미의 부모, 슈헤이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죽이고 그들의 돈을 가져오라고. 슈헤이는 거부한다. 초등학교도 못 바친 슈헤이도 선은 있었다. 슈헤이는 정신이 황폐한 아이였지만 악마가 아니었다. 하지만 슈헤이에게 다른 선택권이 있었을까. 엄마가 원하는 일이었다. 그게 무엇이든, 엄마의 부탁이었다. 슈헤이는 초인종을 누르고 얼굴을 알아보는 노인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살인을 실행한다. 슈헤이의 모든 옷에 피가 뿌려진다. 슈헤이는 곧 체포된다. 정황상 미스미가 시킨 게 분명했지만 슈헤이는 증언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감옥을 선택한다. 징역 12년을 선고받는다. 슈헤이에게 감옥은 밥을 주고 책도 읽을 수 있는 곳이었다. 살기 위해, 엄마 미스미와 분리가 필요했다. 살기 위해, 감옥이 절실했다. 미스미 곁에서 슈헤이의 삶은 없었다. 엄마 곁에서 아이의 삶은 없었다.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미스미의 삶을 유추해보기도 했다. 사연 있는 악귀일지도 몰라. 부모의 차별과 수컷 새끼들의 배신, 미혼모에 대한 사회의 냉대 등 상처 받은 짐승이 방향을 잃고 자기 새끼들을 말려 죽이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영화는 굳이 부연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미스미는 자신의 선택을 악행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이를 맘대로 하는 게, 부모의 자격이라며 당당한 눈빛으로 이야기한다. 이런 태도로 슈헤이를 떠밀어 온갖 구걸을 시키고 친족 살인자로 만든다. 미스미는 완전한 가해자와 착취자로 위장한 약자였다. 엄마라는 지위로 자식의 생을 말살한다. 세상에서 자기보다 약한 자는 자식들 뿐이었으니까. 다른 곤충의 몸에 알을 낳고 그 곤충의 몸을 파먹고 자라게 하는 기생벌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미는 슈헤이의 삶을 다 파먹으며 자신의 숨통을 연명했다. 껍질만 남은 슈헤이를 끝내 감옥으로 밀어 넣으며 착취는 중단되었다. 슈헤이는 출소 후 무엇이 될까. 슈헤이가 책을 읽는다면 어떤 슈헤이가 될까. 그때의 세상은, 미스미가 남긴 슈헤이라는 악의 씨를 감당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