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질 수 없는, 난임 부부가 마주하는 문제들

울리케 코플러 감독. 가질 수 없는

by 백승권


난임의 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라는 절박한 하소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임신을 고민하기 전 두 남녀가 지녔던 따스한 화학작용이 축조한 아름다운 건축물에 고요하고 거대한 균열의 파장을 남긴다. 파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관계의 존재를 의심하게 만든다. 인생을 바꿀만한 뚜렷한 하나의 목표를 세웠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나가 되어 낮과 밤을 태웠다. 계획하고 전문가와 상담하고 검사하고 정확한 시기를 정하고 실행한다. 실패. 한두 번에 되기 힘들 거란 건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계획하고 전문가와 상담하고 검사하고 정확한 시기를 정하고 실행한다. 실패. 중간은 없다. 각오는 했지만 몸과 맘이 지친다. 의지는 남아있지만 상대도 나와 같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특히 여러 검사와 진료를 거친 여성의 몸과 심리는 심한 피로감을 경험한다. 이건 반복하면 근육이 붙는 트레이닝이 아니다. 무엇보다 다시 비용과 노력을 들여 시도한다고 성공률이 올라갈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담당의와 상담을 하고 다른 방법을 시도한다. 결정은 모두 당사자 몫이다. 병원에는 비슷한 처지의 부부 또는 여성들이 대기하거나 상담, 수납을 하고 있다. 귓가에 떠도는 무익한 이야기들, 누구는 자연 임신, 누구는 혼전 임신, 누구는 몇 년 만에, 누구는 마침내, 누구는... 그 누구 속에 우리의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다. 결혼한 부부를 지나 임신 시도자들이 되어간다. 아이를 원한다. 하지만 버티기 힘들다. 점점 내 의지와도 거리감이 생긴다. 같은 목표를 세운, 나와 결혼한 이 사람과도 거리감이 생긴다. 이런 고생이 우리의 결혼 계획에 들어 있었나. 우린 이걸 사전에 진정 각오하긴 했나. 누구는 정말 '쉽게' 가지던데. 이럴 가치가 있나. 투자 대비 수익을 따지기 시작하면 주변에 있는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노력한 것들, 같이 노력한 사람, 그리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지금, 곁에 남아 있지만 희미해진 관계. 임신 이전으로 돌아가 결혼의 타당성까지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다. 지금 이게 맞나. 알리스(라비니아 윌슨)와 니클라스(엘리야스 엠바렉) 부부는 난임 중이다.


둘은 휴가를 온다. 잠시 멈춰야 했다. 멈춘다고 기억과 경험이 사라질 리 없다. 둘은 아이를 원하고 아이는 생기지 않는다. 숙소는 아름답다. 옆 호실에 4인 가족이 온다. 마당으로 오갈 수 있다. 인사를 나눈다. 30대 여성과 40대 남성 부부와 사춘기 남아와 4,5세 정도의 여아로 이뤄진 안정된 구성. 난임으로 삶의 모든 기운을 빼앗긴 알리스의 표정이 다시 굳는다. 방을 옮기려 했지만 대형 호텔이 아니기에 쉽지 않다. 그냥 두기로 한다. 알리스는 니클라스와 섹스를 원한다. 니클라스는 알리스와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 알리스의 욕구를 니클라스는 의심한다. 자신을 향한 끌림이 아닌 생산을 향한 과정을 치르려는 게 아닌지 의심한다. 계속 피한다. 니클라스의 몸조차 알리스의 자극적 구애에 반응하지 않는다. 알리스는 여러 번 좌절을 경험한다. 니클라스는 관계 개선을 위해 위로랍시고 이러저러 말을 하지만 무슨 싸구려 처세서에서 읽은 듯한 판에 박힌 말들 뿐이다. 전혀 닿지 않는다. 옆 호실 가족의 안정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은 둘의 갈등을 가열시킨다. 이런 구도는 오래가지 않는다.


옆 호실 큰 아이는 사춘기 아우라로 가득하다. 계속 혼자 있고 같이 있어도 혼자 있다. 부모의 말을 전혀 따르지 않고 부부 역시 이 아이 때문에 고민이 많다. 이미 갈등의 심지는 타오르고 있었다. 다툼이 늘고 견해가 좁혀지지 않는다. 쉬울 리 없다. 아이는 타인이니까. 그리고 이들에게 가족은 타인을 부둥켜안고 죽을 때까지 같은 방향을 밀고 가야 하는 구속된 공동체이니까. 저녁 시간, 두 가족이 와인을 나누던 중 진실의 입들이 터진다. 알리스 니클라스 부부는 연애 초반 갑작스러운 임신을 했으나 지웠다. 이 일은 둘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다른 부부는 아이도 듣는 자리였는데 선을 넘는다. 10대 때 '저지른' 임신과 출산을 후회하는 듯 내지른다. 고성이 오간다. 자리가 비워지고 분위기는 급속 냉각된다. 말다툼 중 와인잔이 벽으로 날아간다. 만취가 깨지 않는 다음 날, 응급 헬기가 숙소에 착륙한다. 옆 부부 아이 중 한 명이었다. 상비약을 닥치는 대로 털어 넣었다고 했다.


알리스와 니클라스에겐 또 다른 주관식 문제와도 같은 사건이었다. 저런 걸 감당할 수 있을까. 만약에 순전히 너와 나의 유전자로 만든 애를 낳아 키우면, 우리라고 애를 저지경으로 만들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나. 사람들은 왜 저런 걸 수없이 마주하면서도 아이를 가지려 할까. 저 아이는 깨어날까. 만약 그렇지 못하면 저 가족은 부부는 어떻게 되나. 거기에 우리 탓은 없나. 우리와 대화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처음에 방을 옮겼더라면 다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더 이상 난임 해결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둘은 결혼이란 계약의 불완전함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었다. 휴가는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며 상황은 거의 바뀌지 않고 관계가 좁아질 기약은 없었다. 처음의 애틋함으로 돌아갈 거란 자신이 없고 아이를 지운 역사 또한 지워지지 않는다. 알리스와 니클라스는 한때 서로를 끝까지 사랑한다고 맹세했겠지만 지금 니클라스는 알리스에게 필요 없었다. 크고 놀라운 일이 발생할 때 포옹해줄 대상이 필요하지만 그게 꼭 니클라스일 필요는 없었다. 결혼 후 공동의 고난은 서로의 다른 면과 마주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관계의 지속 여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머리와 가슴으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하게 된다. 이들에게 난임은 거대한 시험이다. 그리고 결혼은 이런 시험의 연속이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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