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즐로토스키 감독.이지 걸
아름다운 외모는 중요하다. 내면의 가치 어쩌고 하는 것들도 결국 외면을 가꾸는 노력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균형은 지향점이지 가능한 게 아니다. 내면과 외면의 구성요소들을 열거하며 쉼 없이 저울질할 수 있지만 시각 정보의 장악력은 시작부터 이후의 모든 사고와 말풍선들을 압도한다. 단숨에 파악하고 판단으로 유도한다. 수많은 타인들은 시선의 중앙에 놓인 하나의 피사체를 대상화(영화에서는 남성들의 시선에 둘러싸인 여성)하며 자신의 경험과 정보와 비교해본다. 휴양지에서의 시간은 짧다. 자신이 정한 조건에 맞는 타인들을 빠르게 검색해야 한다. 인간 시장이자 데이트 게임이다. 진지한 토론 따위에 햇볕과 요트, 파도와 해변을 낭비할 여력이 없다. 명품을 선물할 수 있는 재력과 말을 걸고 싶은 외형이 만나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끼니에 생존을 걸어야 했던 고대 조상들은 음식과 섹스를 교환했다는 기록을 읽은 적 있다. 지금은 다른가.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정서적 허기와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한여름 휴양지의 가벼운 만남에 불을 붙인다. 평범한 10대 소녀 나이마(미나 파리드)는 소피아(자히아 드하르) 언니처럼 되고 싶었다.
소피아는 성형한 외모와 노출이 많은 패션으로 휴양지 남성들의 시선을 유도했다. 샤넬백과 문신은 자존감이었다. 나이마는 크게 내색은 안 했지만 그런 소피아에게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한다. 언니와 같이 있는 것만으로 크고 화려한 요트의 남성들에게 초대받아 파도와 바람을 누비며 놀 수 있었다. 희롱하며 접근했다가 거절당한 남자들이 쌍욕을 퍼부어도 무시하며 지나치는 소피아가 신기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똑같은 샤넬백을 들고 선착장을 휘젓고 다닐 때는 기쁨과 자신감이 넘쳤다. 언제나 모두가 소피아에게 호의적인 건 아니었다. 소피아의 짧은 식견은 비웃음을 사기도 했고 관계의 열기가 식었을 때 동물처럼 내쫓기기도 했다. 소피아는 웃지 않았다. 성형한 외모 때문인지 표정의 변화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마네킹 같았다. 사람처럼 움직이고 가끔 말하는 마네킹, 어떤 남자들에게는 인간 여자가 필요 없어 보였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트로피이자 마네킹(sex doll)이었다. 소피아는 그들이 원하는 조건에 부합했다. 가벼운 대화와 함께 술과 음식을 먹고 섹스 후 떠나면 끝이었다. 낮과 밤, 요트의 안과 밖, 걷거나 앉을 때 소피아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생각과 마음까지 무표정 일리 없었다. 소피아가 그나마 미소를 지었던 건 나이마의 잠든 모습을 볼 때였다. 세상에 대한 무지가 오히려 순수와 자유를 안겨줬을 시절, 나이마가 지나고 있었고 소피아의 과거가 있었다. 시행착오 끝에 현재의 소피아에 도달한 듯 보였다. 관심을 컨트롤하고 자신의 기호에 맞는 사람과 시선, 음주, 쾌락, 명품을 살 신용카드를 주고받는 것. 하지만 소피아의 무표정은 시종일관 무겁고 어두웠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진심이 오갈 리 없는 관계의 연속, 쾌락 이후에 사라진 것들... 요트에서 쫓겨난 후 소피아는 말없이 나이마를 떠난다. 나이마는 잠시 놓쳤던 일상과 지인들에게 돌아온다. 어떤 여름은 10대 이후의 모든 삶을 바꾸기도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소피아가 다시 돌아올 때면 요트의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가졌다는 자신감과 함께. 그때라면 나이마의 소망 역시 요트에 초대받을만한 외모가 아닌 럭셔리 요트를 가진 자로 바뀔 것이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