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리, 허언증이 살인이 될 때

안소니 밍겔라 감독. 리플리

by 백승권

결핍은 부러움이 된다. 부러움은 열등감이 된다. 열등감은 동경이 된다. 동경은 사랑이 된다. 사랑은 상처가 된다. 상처는 증오가 된다. 증오는 살인이 된다. 살인은 다시 결핍이 되고 열등감, 상처, 다시 살인이 된다. 결핍이 죄인가. 그렇다. 톰 리플리(맷 데이먼)는 타고난 죄를 씻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영화 초반 30분이 힘들었던 이유는 톰의 열등감에 이입되었기 때문이다. 디키(주드 로)는 단순히 재벌 아들이 아니었다. 톰에게 디키는 신의 권좌이자 사랑과 정복의 대상, 죽여서라도 차지하고 싶은 탐욕의 열매였다.


명문대 로고가 박힌 가짜 재킷으로 호의와 환대를 받았을 때, 톰은 전율을 느끼며 남은 생의 생존전략을 짠다. 노력보다 효율 높은 게 흉내라는 걸 체득한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가짜 유대감에 둘러싸여 내적 신분을 상승시킨다. 본질? 진실? 양심? 옳다고 주입당한 이중 어떤 것도 먹고사는 걸 나아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대로 열심히 살면 평생 무명으로 죽을 것 같았다.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삶에 기대는 없었다. 톰은 오랜 궁핍과 결핍이 키운 내면의 악마가 던진 미끼를 덥석 물고 삼킨다. 내장이 다 끊어져도 절대 놓지 않는다. 톰은 점점 사라진다. 진짜 톰은 점점 가짜 디키가 된다. 사람들이 자신을 디키라고 부를 때 톰은 세상의 어떤 남자보다 행복했을 것이다. 톰은 진짜 톰을 십자가에 매달고 가짜 디키가 되어 신의 권능을 누린다. 그러다가 원본 디키에게 거머리 취급을 당하며 이별을 통보받는다. 사형선고였다. 디키는 사형당한다.


복제품이 원본을 압살한다. 그래야 원본 행세를 하며 여기저기 팔릴 수 있으니까. 죄책감? 가짜의 자아가 진짜의 존재감을 뛰어넘은 지 이미 오래였다. 아무도 이 폭주를 막을 수 없었다. 아무도 이 환상의 모래성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아무도 내 지하실의 문을 함부로 열 수 없었다. 누구라도 가짜 신이 된 톰에게 의심을 제기한다면 그 의심은 그대로 유언이 되어야 했다. 톰에게 살인은 유희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수단이었다. 의심이 퍼지면 진짜 톰을 소환해야 하고 그러면 가짜 디키를 숨겨야 했으니까. 신은 숨지 않아야 했다. 방해자는 없애면 그만이었다. 신의 계획을 막으려 한 죄로.


톰의 연쇄 살인을 보며 과거 전기의자에서 생을 마감한 어떤 살인범에 대한 기록이 떠올랐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나는 아니라고 내가 절대 그러지 않았다며 울부짖었다고 했다. 만약 톰이 그 상황이 되면 비슷할 것 같았다. 난 디키야. 난 망할 톰 리플리가 아니야. 날 디키라고 부르지 않는 자들은 모두 죽여버릴 거야. 난 명문대 출신이자 재벌 아들, 재즈와 예술을 사랑하고 상류층 친구가 전 세계에 깔려 있어 일 년 내내 호화로운 휴가를 보내는 디키, 디키라고! 살인을 점점 쉽게 저지르는 톰이라면 대량학살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도 이런 톰 같은 인간들이 많다. 톰처럼 살인을 들키거나 체포되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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