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전쟁을 반대한 죄

아론 소킨 각본/감독.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by 백승권

살다 보면 싸움을 피할 수 없는 때와 마주한다. 자처하기보다 당면한다는 표현이 더 가까울 것이다.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면 영원한 상처와 영혼의 죽음밖에 남지 않는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 같이 죽지 않기 위해 싸움에 싸움으로 저항한다. 폭력 대 폭력이 아닌 가만히 선채로 죽지 않기 위해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시간 공간 인원 투지 관계 시도 분노 희망 모든 이성과 감정, 사회적 자원과 개인적 지성을 모조리 쏟아붓는다. 모조리 쏟아부어야 곤봉에 맞아 죽지 않을 수 있다. 감옥에 처박혀 여생을 보내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모든 결과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도 차선의 결과마저 오지 않는 삶의 불온함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깨우쳐야 한다. 절망은 벼락처럼 찾아오니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다. 다음 또 다음 세대까지 이 싸움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수천수만 청년들이 영문 모르고 끌려 간 지뢰밭에서 육신이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산산조각 난 친구 산산조각 난 아들 산산조각 난 현재와 미래 모든 가능성과 꿈들... 그래서 반대를 외쳤고 공권력은 부유층과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가 없는 자들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깨부순다. 피가 터진다. 눈물이 흐른다. 비명을 지른다. 주동자들은 제압된다. 경찰에게 먼저 폭력을 휘둘렀다는, 경찰도 믿지 않는 죄명으로.


재판정은 모두에게 공정한 곳이 아니다. 위계가 분명하고 재판정 바깥의 차별이 더 깊숙이 발휘되기도 하는 곳. 그때는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차별, 백인보다 흑인에게 더 가혹했다. 애초 백인들은 다른 피부색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목을 매달릴 두려움으로 살지 않으니까. 일상을 지내는 감정의 표피와 농도가 완전히,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흑인을 범죄자로 만들어 감옥에 집어넣는 일은 백인 집권자들에게는 쉬운 게임이었다. 룰을 만든 자들이 원하는 대상들에게 룰을 실행하면 되니까. 어떤 악조건이든 비슷한 부모를 지닌 백인들보다 다양한 가난과 핍박에 둘러싸인 흑인 청년들에게 더더욱 열악했다. 사건의 진위를 밝히고, 다수의 인생과 사회의 미래를 변화시킬 이 무겁고 엄중한 재판정에서 법리를 따져가며 한 꺼풀이라도 지켜줄 단 한 명의 변호인도 없을 만큼.


시카고 재판 7인의 피고인들은 한배에 탄 무리처럼 보였지만 철저히 각자의 노선과 목적과 의도, 여기까지 이르게 된 과정이 제각각이었다. 마치 다른 방식으로 노를 젓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방향도 힘도 구호도 제각각이었고 배는 나아가지 않았다. 가라앉고 있었고 파도는 더 거세어졌다. 관점이 다르고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같은 목적이라고 해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움직인다는 걸 의미했다. 같은 밧줄에 묶여 있더라도 끊임없이 마찰이 일어났다. 서로 완전히 다른 성분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처럼. 생각의 죄인들. 공통점은 모호했고 판결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저항군 리더들에게 승리의 케이스를 만들어줄 여지는 애초부터 없었다. 재판정은 촬영 스튜디오와도 같았다. 판사는 자신이 주연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시작도 끝도 오로지 자신만 정할 수 있다는 점도. 그 낡은 오만이 전쟁은 틀렸다고 생각한 자들 전원에게 유죄를 판결한다. 피고인들은 이후 각자의 방식으로 살고 죽었으며 미국의 역사와 그 재판을 주시한 세상의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은 클래식처럼 퍼져 있는 명언이다. 생각하는 대로 세상을 설계하려는 소수와 이미 설계된 대로 살고 생각하는 다수가 섞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종, 성별, 배경, 재산, 사회적 지위, 기회 모두 다르고, 이 다른 점이 결과를 완전히 바꾼다. 지나온 결과들로 게임의 틀과 룰을 규정하고 이미 이긴 자들이 계속 이길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이 동원된다. 이미 권력을 누린 자들과 그에 부역하는 자들과 함께. 운동장의 기울기는 바뀌지 않는다. 소수들은 중력 그 자체가 되려고 하니까. 모두가 소수가 될 수 없으니, 모두의 소수를 대신 내보낸다. 어차피 태어나기 전부터 기울어졌고 앞으로도 기울기가 쉽사리 평평해지지 않을 테지만 적어도 직립이 가능할 정도로 적응하려면 필요한 것, 톰 헤이든(에디 레드메인)이 영화 초반에 난상 토론을 하며 부르짖는다.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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