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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ug 03. 2021

스카이 로호, 선처 없이 복수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카이 로호

살다가, 살아내다가 암흑의 격랑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숨이 막히고 격렬한 통증과 현실과 환각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진다. 온 신경이 절멸될 듯한 극단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쇼크와 가사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다시 눈을 떠도 다시 달이 뜨면 다시 지옥이라서 차라리 누군가 날 없애버렸으면 하는 충동에 빠질 정도로,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없는 상황. 나를 움직이는 건 내가 아니다. 나를 내가 컨트롤한 적이 없다. 개처럼, 개의 개새끼처럼, 개의 혀와 꼬리와 발바닥처럼, 남의 혀와 똥을 삼키며 자아를 빼앗긴다. 나를 모멸과 굴욕에 빠뜨린다. 도망치지 못한다. 내 삶의 주인 바로 나잖아. 어서 도망쳐서 너만의 삶을 살면 되잖아! 방금 전까지 대화하던 사람을 산성 통에 빠뜨려 뼈와 살을 녹여 죽이는 자들 사이에서는 선택지가 없다. 그들이 제시하는 조건이 선택지다. 그들이 원하고 명령하는 게 삶의 방향이다 현재다 미래다 전부다. 죽을 수 없어서 죽지 않는 옵션을 받아들인다. 죽지 않기 위해 비명과 고통 속에서 살아있기를 선택한다. 무력과 공허 속에서 존재감 없는 존재가 되어야 죽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를 가족을 건사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그저 타인의 의지로만 존재하는 자다, 나를 이용하고 사용하고 사육하는 자들은 나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납치와 성매매로 통해 돈을 버는 자들이 나를 그렇게 다루도록 만들었다. 흉기로 난자당한 동료를 구하기 위해 포주의 대가리를 깨기 전까지 딱 이랬다. 이런 반작용은 배워서 되는 게 아니다. 여하튼 포주 로메오(아시에르 에체안디아)는 뒤진 거 같고 코랄(베로니카 산체스), 지나(야니스 프라도), 웬디(랄리 에스포시토)는 도망치기로 한다. 아니 왜 도망쳐, 복수하기로 한다. 차를 돌린다.


그래 이제 우리 그동안 오랫동안 비정상의 삶을 지긋지긋하게 살았으니까 정상의 삶을 제대로 살아보자. 남이 시키는 대로 성매매와 살인은 그만하자. 성매매의 연결고리에서 빠져나오려면 스페인 성인 남성의 40% 이상을 죽여야 한다. 우선 먼저 악마와 교주 코스프레를 하는 불멸의 포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은  적용되는  아니다. 산업화된 범죄 네트워크를 막을  없다면  인생을 망가뜨린 주범들이라도 심판해야 하는데 이들의 마인드 역시 자신을 피해자로 지정한다. 파는 물건이 주인을 버리고 도망쳤으니  손으로 잡아 죽이겠다고 지옥의 들개처럼 침을 흘린다. 도망자들은 찰나의 자유에 만족하지 않고 인간다운 자존과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가해자들에게 지울  없는 치명타를 입히기로 한다. 그게 유일한 보상이었다. 그게 없다면 남은 삶을 고장  영혼으로 지내야 했다. 열정은 긍정적인 결과를 담보할  없고 포주의 몸과 맘을 상처 입힌 죄로 빨리 굳는 시멘트 속에 생매장당한다. 마약에 절여진들 죽음이 현실이  절망과 공포를 이길  없었다. 어릴  엄마를 학대하는 성인 남자를 죽인 이후로 인생을 타인에게 양도한 모이세스(미구엘 앙겔 실베스트르) 자신과 자신의 삶을 좋아한  없었다. 시키는 대로 남을 납치하고 때리고 죽이는  전부였고 이런 자신을 증오했다. 코랄이 자신을 구원했다고 여기기 전까지. 로메오를 향한 충성과 코랄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모이세스는  마리 토끼를 잡았다가 놨다가 하며 모두 잃는다. 광기와 후회에 시달리며 번민하다가 감정을 들키고 배신을 실행하며 구덩이에서 시체를 꺼내 햇빛에 널어놓는다. 도망자들을 쫓는 사냥개가 되었다가 주인을 무는 미친개가 되었다가 가족을 잃고 자멸한다. 범죄의 배경엔 범죄자의 과거가 녹아있지만 모든 과거가 범죄를 이해 타당한 행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모이세스는 울부짖는다.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 외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카이 로호는 한 가지 문제의 중력만으로 캐릭터들을 끌고 가지 않는다. 인간이 빠져나올 수 없는 혈연이라는 고리와 평생 갈등하게 하는 의리와 충성이라는 코드로 꽁꽁 옭아맨 후 더 복잡하게 타오르는 새로운 불덩어리에 집어넣는다. 다 타버린 장작은 살인으로 끝낸다. 여성을 사고파는 스페인의 현실을 고발하고 남성 중심 체제를 전복시키는 척 하지만 모든 과정을 눈눈이이, 폭력과 살인, 신체 훼손이라는 수단으로 처리한다. 쾌감은 반복될수록 희석된다. 어떤 자들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 죽었다 살아난 자들이 이야기의 멱살을 끌고 간다. 온통 핏물에 젖어 닦을 수건이 다 동이 날 지경이다. 혹독하게 길들여진 자들이 자기 결정권을 되찾으려는 문제의식을 다루는 몇몇 장면들은 특정 범죄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공감대를 자아낸다. 공익과 경각심에 대한 메시지를 교조적으로 전하기보다 (남성을 향한 여성의) 복수와 심판 과정의 액션과 쾌감에 집중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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