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 핑샤이트 감독. 언포기버블
그때 루스(산드라 블록)는 지옥의 꺼진 바닥에 빠져 죽음보다 더 깊고 급박한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겨우 이십 대 중반, 엄마는 죽고 아빠는 죽고 동생은, 너무 어렸다. 동생이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 엄마는 어둠 속으로 영영 들어갔다. 루스는 동생의 엄마 아빠 보호자 수호신의 역할을 해야 했다. 그 시간을 견디며 동생은 루스의 전부가 되었을 것이다. 동생 없는 삶은 삶일 수 없었다. 시골 먼 구석 작은 집이었지만 유일한 지붕이자 바람을 막아주는 유일한 물리적 공간이었다. 건장한 남자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강제로 문을 열려고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경찰차가 와 있었고 루스는 소리치고 있었다. 은행이 루스와 동생의 집을 압류했다. 그 집은 더 이상 루스와 동생의 공간이 아니었다. 비워야 했다. 루스에겐 대책이 없었다. 5살 동생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웅크린 채 사지에 몰려 동공에 초점을 잃은 언니를 바라보며 겁에 질려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 총 격발음, 비명... 루스는 그곳에서 경찰 살인자가 되었고 20년을 복역한다.
늙고 낡은 루스의 몸은 여전히 단단한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경관 살해범이 만기 출소했다고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제도적으로 감시 대상이었고 사회적으로 격리 대상이었다. 목수일에 탁월했지만 냉동 창고에서 하루 종일 생선 머리를 자르고 배를 갈러야 했다. 관심은 경계 대상이었고 무관심은 익숙한 외로움이었다. 세상에 다시 나온 루스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동생을 찾는 것. 하지만 길도 방법도 도와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온 지구가 힘을 모아 루스의 의지를 분쇄시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감옥에서 보낸 수천 통의 편지에 단 한 장의 답장도 받을 수 없었다. 동생은 그때의 충격으로 그때 기억이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정상 생활에는 문제없었지만 부서진 기억은 간헐적으로 동생을 괴롭혔다. 기억의 근원과 배경을 아무도 설명해 줄 수 없어 동생은 내내 괴롭기만 해야 했다. 동생을 입양한 양부모는 동생을 지켜야 했다. 경찰 살해 전과자와 절대 만나게 할 수 없었다.
루스는 천천히 자기 생의 집을 다시 쌓아 올리려 했지만 담당 경찰의 충고처럼 세상의 냉대와 따라오는 폭력 속에서 계속 부서지고 허물어질 뿐이었다. 루스는 변명하지 않고 감내했지만 동생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피의 부메랑이 돌아오고 있었다. 은행에서 시작된 약탈은 당시 집만 빼앗은 게 아니었다. 한 경찰만 희생된 게 아니었다. 그 경찰의 가족의 삶마저 무너뜨렸다. 남은 가족은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루스가 죽어야 끝날 거래였다. 아니면 루스의 가족이. 멈출 줄 모르는 죽음의 도미노가 인간과 삶의 숨통을 끊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루스는 동생과 만나야 했다. 동생을 만나기 전까지 세상은 여전히 독방이었다.
언포기버블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람들과 삶을 응시한다. 죽을힘을 다해 겨우 살아내는 자들의 지친 눈빛과 절규에 집중한다. 계속 과녁을 빗나가는 상황에 대해 우려한다. 거대 금융 자본과 비겁한 조상들에게 삶의 기회를 빼앗긴 사람들은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끌어안은 채 겨우 삶을 끌고 가며 다른 사람의 삶을 뺏아아야 만 자신의 공허를 채울 수 있다고. 살육의 풍경 속에서 웃는 자는 저 먼 곳에 있다고. 결국 상처 받은 당사자들끼리 더 다쳐가며 피에 젖은 매듭을 풀고 이를 악물며 한 걸음 더 내딛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타인들의 추위를 돌봐야 한다고. 입던 옷이라도 주고 도넛이라도 사주고 말 한마디라도 다정하게 걸어야 한다고. 그러다 보면 어쩌면 운이 정말 좋다면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루스의 동생 같은 존재와 만날 수 있다고. 자신이 유일하게 기억하고 지켜주고 싶은 자신의 따스한 과거를 안아줄 수 있다고. 그리고 이건 가능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