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홀 감독. 패싱
개인의 원본은 부모다. 부모의 외형부터 내면의 병까지 이어받아 태어난다. 부모, 또는 최소한의 보호자 얼굴만 알고 자란 어린 시절엔 비교 대상이 없다. 나이를 먹고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집단에 속하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경험을 거치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또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자신과 타인, 자신의 입지와 주변의 환경을 구분 및 비교하고 그때까지 자신이 가늠한 전체 안에서 비중을 따지게 된다. 나는 누군가. 어느 정도에 속했나. 다른 사람은 어떤가. 나는 얼마나 가지고 누리나. 내게 없는 것과 너에게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왜 없나, 너는 왜 있나. 너는 있어서 좋고 나는 왜 없어서 별로인가. 바꿀 수 있나. 노력이 필요한가. 혼자 가능한가. 도움이 필요한가. 도움과 노력이 있으면 현재에서 이상으로 바꿀 수 있는 건가. 문제는 해결되는가. 불편함은 해소되는가. 나는 우월해질 수 있나. 준거집단 안에서 상향된 지위를 갖출 수 있나. 무수한 경험과 시도 끝에 여기까지 사고에 이르면 이런 자문을 하게 된다, 스스로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건가. 그럴 수 없다면 감당해야 하는 건가. 나와 비슷한 남들처럼 나도 그래야 하는 건가. 더 나쁜 경우도 많으니 이 정도로 만족하면 되나. 내 꿈은 내 외형보다 너무 거대한데. 내 꿈에 다다르기 위해 내 외형은 너무 장애물 아닌가. 난 왜 스스로에 만족하지 못하나. 나는 왜 스스로를 숨기려 하나. 이건 학습된 것인가. 사회적 시선과 경험이 누적된 결과인가. 아니면 타고난 소심함인가. 너무 타인 지향적 삶을 사는 게 아닌가. 그게 나쁜가. 그게 백인이라도 틀린 건가. 흑인으로 태어난 여성이 백인의 삶과 지위를 동경하며 사는 게 잘못된 건가. 내가 평균의 백인들보다 부유하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도 많고 커다란 집에서 호의호식하는데, 백인보다 우월한 흑인이 아닌 어느 흑인들보다 우월한 백인이 되면 어떤가. 상점 입구에만 가도 백인과 흑인에게 대하는 태도 자체가 완전히 차원이 다른데. 나도 저렇게 대우받고 싶은데. 백인이 되는 게 어떤가. 백인이 되어 백인들과 어울리고 어디서든 나은 대우를 받으며 살면 어떤가. 그저 피부색을 바꾸면 끝인데. 백인으로 태어나 백인으로 살다가 백인으로 죽는 부류들은 평생 귀족 대접 아니 사람대접을 받으며 사는데 우리 흑인들만 언제까지 개돼지로 살아야 하나, 언제까지 백인들에게 끌려가 죽도록 맞다가 나무에 목매달리는 공포를 느끼며 살아야 하나.
백인의 시선은 모든 흑인의 삶을 꽁꽁 묶는다. 백인 조상들이 노예로 부린 흑인들은 이제 전쟁을 지나 자유인의 지위가 되었지만 백인의 생활에 깃든 흑인=노예라는 공식은 단숨에 허물어지지 않는다. 한때 돈 주고 사고팔던 노예들이 나와 같은 눈높이로 같은 거리를 걷고 같은 공간에 다니다니. 이들이 사람 흉내를 내며 의견을 말하고 주장을 하다니. 백인의 상대적 우월함을 입증하는 자료는 없다.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다 여기는 건 백인들이 그렇게 말하고 다수가 믿고 따르기 때문이다. 근거는 필요 없다. 백인의 존재가 곧 흑인 탄압의 이유가 된다. 일부 흑인들은 결심한다. 흑인의 자유와 권리를 부르짖을 시간에 백인이 되어 그들 사이에서 노는 게 더 낫겠다. 그렇게 흑인은 백인이 된다. 외형을 바꾸고 태도를 다듬는다. 패싱(Passing)이라 부른다. 흑인이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숨기고 백인 행세를 하는 것.
아이린(테사 톰슨)은 우아한 태도를 지닌 부유한 흑인 가정의 성인 여성이다. 남편 브라이언(안드레이 홀랜드)이 아이들에게 흑인이 백인에게 억압당하는 이야길 하는 걸 싫어한다. 아이들이 불편한 진실을 서둘러 아는 게 우려된다고 하지만 아이린도 브라이언도 알고 있다. 자신이 그런 부류에 속한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싫어서 그런다는 걸. 어느 날 아이린은 클레어(루스 네가)와 마주친다. 어릴 적 친구다, 그런데 클레어를 못 알아본 건 우연이 아니다. 대충 보면 백인처럼 보인다. 처음 만나 백인으로 소개받으면 백인으로 오해할 정도로, 클레어는 백인처럼 외형을 바꾼 흑인이고 오랜만에 만난 아이린의 삶에 깊숙이 침투한다. 남편과 친해지고 사교파티의 여왕이 된다. 클레어는 시종일관 불안에 시달린다. 남편, 아이들, 하인, 중요한 지인들까지 모든 관심의 중심이 순식간에 클레어가 되는 걸 견딜 수 없다. 클레어는 무슨 꿍꿍이일까. 모든 걸 토로하듯 털어놓지만 믿을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 백인을 동경하는 흑인의 삶에 가짜 백인이 들어와 모든 것을 망쳐놓기 시작했다. 되돌릴 수 있을까. 그저 내가 동경하는 지점에 먼저 도착한 친구의 삶을 응원해야 할까.
클레어는 백인들 사이에서는 백인을 흉내 낸 흑인처럼 보이지만 흑인들 사이에선 백인처럼 보인다. 만인이 클레어를 좋아하고 칭송한다. 아이린도 처음엔 클레어의 부탁으로 백인 친구인척 하기도 했다. 백인 행세를 하는 동안 마주 앉은 백인 남성(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은 흑인들을 저주하고 마구 혐오했다. 어떤 대응도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아이린은 여성 흑인이었고 상대는 건장한 남성 백인, 게다가 클레어의 남편이기도 했다. 흑인은 백인보다 사회적 지위가 열악하고 여성은 남성보다 사회적 지위가 열악한 시대였다. 흑인 여성의 지위보다 더 낮은 지위는 없었다. 클레어는 (백인의 지위를 나누는 기준이기도 한) 부와 지성, 매력적인 외모를 모두 지녔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기회에서 밀려나야 했다. 남편은 사회적 지위가 높고 자상했지만 자신이 아닌 클레어에게 남성적인 사교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클레어는 인종 전쟁의 투사가 아니었다. 남편의 관심에게서 멀어지고 싶지 않은 사랑과 질투에 휩싸인 아내였다. 이것만은 절대적으로 지켜내야 할 성역이었다. 클레어가 현재의 선택을 한 배경을 이해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클레어는 선을 넘으려는 듯 보였고 아이린은 밀어내야 했다.
클레어는 밀려난다. 백인 남성의 폭력 바깥으로, 클레어는 밀려난다. 까만 밤공기 하얀 눈밭 위로, 클레어는 밀려난다. 그렇게 돌아오고 싶던 흑인 사교 커뮤니티의 바깥으로, 클레어는 밀려난다. 동경했던 평범한(평범해 보이는) 흑인 가정의 바깥으로. 백인을 흉내 내던 클레어는 백인의 삶을 원하며 사랑과 질투에 휩싸였던 흑인 여성과 보수 백인 남성이 형성한 공동의 외압에 의해 밀려난다. 타고난 원본 대신 새로운 원본을 선택했고 모든 선택의 이점을 놓치지 않은 채 무혈로 돌아오려 했지만 실패한다. 소멸되는(Passing) 대가를 치른다. 흑백 화면은 어느 것도 숨기지 않는다. 피부색, 눈빛, 갈등과 질시, 혼란과 욕망까지, 더 강렬하게 드러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