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다노 감독. 와일드라이프
남의 집은 늘 그럴듯해 보인다. 자넷(캐리 멀리건)과 제리(제이크 질렌할), 조(에드 옥센볼드)의 집도 그랬다. 평범하고 행복해 보였다. 주방용품 전단지에 나오는 일러스트처럼, 다정한 아빠, 세심한 엄마, 온화한 표정의 소년, 남자는 일을 하고 여자는 음식을 차리고 아이는 숙제를 했다. 붕괴의 신호가 있었나. 아니, 느닷없이 우르릉 쾅쾅 이런 건 없었다. 시작부터 모든 벽에 금이 가 있었다. 그들이 모여 사는 건 그들이 원해서가 아니었다. 자넷과 제리는 스무 살에 조를 가졌고 이후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했다. 먼 산의 불은 꺼지지 않았고 이 가정 역시 자욱하지 않은 곳이 없어 보였다. 불이 꺼진다고 회복이 가능할까. 불이 꺼질 수나 있을까. 이미 다 시커멓게 망가지고 황폐해졌는데.
제리의 잦은 이직이 자넷의 불안을 부추기고 조의 사회 적응을 방해했다. 계속 전학해야 했던 조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했다. 제리는 남자다움을 강요하듯 풋볼을 부추겼고 조는 순응했지만 학교 누구도 그를 게임에 끼워주지 않았다. 제리는 영혼까지 궁핍했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남은 건 약자의 자존심뿐이었다. 타협을 몰랐고 그래서 자넷과 조는 덩달아 가난해져야 했다. 난국이었다. 돈은 늘 필요했지만 제리는 직업이 없었다.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데 가리는 건 많았다. 자넷이 일을 구해야 했다. 제리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자존심으로 허기를 채울 순 없었다. 둘은 다툰다. 조는 오래전부터 직감했을 것이다. 여러분들 사이에 내가 태어나서 삶이 힘들군요.
제리는 떠난다. 먼 산의 꺼지지 않는 불을 끄러. 전문 소방관이 아니어도 힘쓰는 저렴한 인력은 늘 구하고 있었고, 자넷과 언제까지 소리만 지르며 살 수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과거를 뒤로 한채 기약 없는 미래로 도망치고 싶었다. 아들 조와 떨어지는 건 가슴이 미어졌지만 제리는 트럭 뒤에 올라타야 했다. 자넷이 타 죽을 거라고 그토록 만류했지만 제리는 떠난다. 자넷은 마중하지 않는다. 자넷은 일을 하며 사람들을 만난다. 조는 말이 없었고 떠난 아빠가 그리웠고 예쁜 엄마의 슬픔과 눈물을 곁에서 이해했다.
자넷은 새로운 남자 워렌(빌 캠프)과 가까워진다. 그는 나이 많은 기혼자였고 무엇보다 제리보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보였다. 조를 데려간 워렌의 집에서 자넷은 춤추고 키스한다. 자넷은 워렌과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새로운 삶을 열망했다. 한밤 중 잠 깬 조는 자넷의 침실에서 벌거벗은 워렌을 본다. 제리가 집에 돌아오고 아내와 외도한 남자의 집에 불을 지른다. 먼 산의 불길을 겨우 잡은 인간이 자기 삶을 불태우고 있었다. 조는 이 모든 절망을 저지할 힘이 없었다. 아마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빠가 엄마와 외도한 남자의 집에 불을 지르지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자넷은 떠난다. 선택지가 없었지만 두 남자만 돌보며 여생을 보낼 수도 없었다.
영화 와일드라이프의 배경은 1960년대 미국 몬태나지만 2020년대 미국 어느 시골이라고 해도 분간할 길이 없어 보였다. 다른 점이라면 줄이 긴 전화기와 라디오, 흑백텔레비전, 트럭 정도였다. 그때도 부자 노인들은 골프와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도 평범하게 가난한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었다. 그때도 다툼과 외로움은 있었고 그때도 후회와 절망은 자욱했다. 자넷과 제리는 연기처럼 떠돌아다녀야 했고 화려한 과거를 짐작할 수 있는 건 자넷의 옷들뿐이었다. 누구도 죄를 따지지 못했지만 오랫동안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조도 언젠가 제리처럼 인생의 불길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자넷처럼 너무 이른 나이에 삶에 인질처럼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피임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