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매,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의 연기에 대하여

이승원 감독. 세자매

by 백승권

나는 내 인생 밖에 안 살아봐서 모두가 비슷하게 사는지 알 길이 없다. 한정된 정보의 축적을 통해 짐작하고 대강 단정 내릴 뿐이다. 이마저도 개인 관점의 필터링이 전 과정에 무수히 이뤄져 신뢰랄 게 없다. 나는 남을 알지 못한다. 남의 인생도. 그저 그렇게 여기는 게 편해서 그렇게 여길 때가 많을 뿐이다. 뭐어 다아들 비이스읏하지 않겠냐고. 이렇게 생각하면 가아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중장기적으로 진짜 도움인지 따져봐야겠지만. 임시방편으로 모면하게 된다. 내가 내 인생이 별로라는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게 된다. 나만 이런 게 아닐 거잖아. 남도 비슷할 거야. 비슷하게 힘들고 어렵고. 나는 그나마 낫지 않을까. 나는 내 인생은 최소한 중간 이상은 될 거라는 생각. 착각. 망각. 생각할수록 답은 없고 쓰면 쓸수록 모를 일이다. 내 앞길도 모르겠는데 타인의 삶이라니. 나는 모른다. 다만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남도 나와 비슷하게 살지 않겠나... 방어하며 추측할 뿐이다.


죽도록 싫은 사람을 자신이 닮았다는 진실보다 몸서리 쳐지는 일은 많지 않다. 평생..."조까튼 집구석"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덜 자란 나이, 무방비 상태에서 가장 가까운 이에게 끊임없는 폭력을 당하고 도망친 곳에서 비슷한 습성을 지닌 가해자 무리들에 의해 지옥으로 돌려보내진다.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일. 모두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아끼는 사람들 모두와 자다가 죽어도 좋으니 그 인간 만은 떨어뜨려 달라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남은 모든 삶의 고통과 슬픔이 죽음보다 나았을지 알 길이 없다. 매일 당면할 뿐이다. 자해와 왜곡된 믿음으로 다음 세대까지 어둠의 기억을 각인하고 비극의 중력으로 유도할 뿐이다. 가해자로 인해 가해자가 되어야 하는 삶. 선택한 적 없고 벗어날 수도 없다.


신의 방관은 얼마나 잔혹하고 신을 향한 기도는 또 얼마나 쓸데없나. 이렇게라도 폭력의 역사를 이해하고 싶었나. 나한테 우리한테 대체 왜 그렇게 오랜 기간 학대했는지. 그가 섬기던 신에게 묻고 물어서 답을 얻었나. 답을 몰라서 밥상에 앉은 아이에게 기도 왜 못하냐고 윽박지르나. 신은 왜 이토록 신실한 자에게 "발정 난 개X끼"를 배우자로 주셨나. 신이 아닌 인간의 실수인가. 신은 그런 적 없나. 신은 그저 뜨거운 기도 예배 후에 자매님의 안면을 짓밟는 걸 모른 척해주시면 되는 건가. 교회 구석은 얼마나 불륜에 최적화된 장소인가. 신을 조롱하며 욕망에 헐떡거리는 지식인의 숨통을 끊는 건 돈줄 밖에 없나. 거세가 아니라? 체계적인 폭력을 구사하는 전략은 유전인가. 자신이 가해한 상대가 피눈물을 흘리며 노래하는 모습을 계속 눈 맞추며 지휘하는 것. 교회는 죄지은 자들이 모여 새로운 죄를 짓는 곳이다. 이 안에서의 죄는 마치 신이 용인한 듯한 착각에 빠질 수 있으니까.


어떤 지하에서는, 그가 신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고개를 한없이 조아리며 무릎을 꿇어야 했다. 딸에게 나 같은 삶을 도저히 반복하게 할 수 없어서. 쓰레기를 만나지 마. 나처럼 쓰레기를 만나면 안 돼.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보이는 자에게 사정사정해야 했다. 우리 딸(김가희)은 제발 나(김선영)처럼 "그지 같이" 살면 안 되니 제발 제발 저리 가주세요. 당신이 쓰레기라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당신보다는 덜 어두운 사람과 만났으면 하는 게 제가 단명하기 전 유일한 소원입니다. 어차피 내 삶은 글렀고 게다가 암까지 걸려서 간당간당하니 우리 딸 우리 딸 인생 제발 조금이라도 사람다워야 하니까. 제발 이마에 묻은 피는 닦고 사라져 주세요. 진심으로 애원했다. 딸이 나를 싫어하는 것보다, 딸이 나처럼 되는 게 죽을병보다 더 무서웠다.


작가에겐 세상 모두가 적이다. 과자만이 구원이다. 가장 자유롭지만 동생(장윤주)이라는 이유만으로 언니(문소리)의 삶을 침범한다. 늘 소주에 취해 모든 대화에 "씨X"을 라임처럼 삽입한다. 위장에 술을 들이붓는다고 원하는 글이 써질 리 없다. 이게 가능했다면 모든 주류 회사는 출판사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했을 것이다. 작가는 자기 돈으로 술을 사 먹고 글은 글대로 써지지 않는다, 자학과 자기 방어를 위한 공격성만 늘어갈 뿐이다. 가장 흔하고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부류. 그에게 문학의 신이 동아줄을 내려줄 날이 올까. 아니. 너무 늦게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이제껏 어느 누구도 되지 못해서 엄마라는 캐릭터는 더더욱 될 수 없었다. 아이를 위해 용기 내 찾아간 교무실에서 개진상 부리다 토하고 수돗물로 입을 씻으며 운다.


누구도 죽지 않아서. 사탄의 탄신일에 늙고 다치고 병든 자식들이 종교지도자와 한자리에 모인다. 두 손 모아 기도하던 사탄의 머리에서 피가 뿜고 악마의 자식들은 얼굴에 오줌을 싸고 씹던 잡채를 뿜는다. 기도와 욕설, 울부짖음과 고성으로 공간은 요동친다. 바다는 말이 없고 아무것도 회복되지 않는다. 세자매는 다음 애비 생일 때까지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이다. 애비가 죽는다면 같이 축배를 들기 위해 모일 것이고 이후에 더 자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자매들이 이렇게 사는 건 모르겠지만 많은 애비들이 이렇게 자식들을 쳐 죽이며 긴 목숨을 연명했다는 건 조금 더 알 것 같다. 지금도 어떤 어린 생명들은 온몸에 피멍이 들고 맨발로 밤길을 뛰쳐나와 도망치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어떤 성인들은 그 기억을 떼어내지 못한 채 홀로 울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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