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삭 감독. 미나리
제이콥(스티븐 연)에게 한국은 견디기 힘든 땅이었다. 아내 모니카(한예리)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칸소, 미국 시골로 옮겨온다. 커다란 컨테이너 같은 나무집, 온통 풀, 숲, 흙, 하늘뿐이었다. 제이콥에겐 꿈이 있었고 모니카는 관심 없었다. 그저 가족 고생 덜하고 덜 외로웠으면 하는 것, 아이들 건강하게 먹고사는 게 전부였다. 제이콥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물도 필요했고 농작물이 잘 자랄 환경적 조건과 가족의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했다. 폴(윌 패튼)이 돕는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릴 종종 하지만 제이콥에겐 현지인이면서 농사 유경험자의 도움이 절실했고 폴과 같이 작물을 심고 물을 주며 돌본다. 모니카는 병아리 감별 공장에서 일했다. 쓸모없는 수컷 병아리는 태워 없애는 곳, 제이콥은 쓸모 있는 수컷이 되고 싶었다. 끝내 폐기되어 소각되고 싶지 않았다. 모니카는 말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니카는 쓸모없는 수컷을 잘 골라내어 폐기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맞벌이는 버거웠다. 모니카는 엄마 순자(윤여정)를 부른다. 모니카는 순자가 그리웠고 미안했으며 같이 있어 좋았지만 마음이 늘 무거웠다. 어른 셋 아이 둘, 제이콥은 외로운 모니카를 위해 교회에 가자고 추천하고 모니카는 기뻐한다. 모니카는 형편에 비해 거금을 헌금 바구니에 넣고 순자는 몰래 회수한다. 폴은 제이콥에게 신의 뜻을 전하려 하지만 제이콥에겐 들리지 않는다. 농사는 안 풀리고 모니카와 데이빗은 (아이들 듣는 곳에서) 계속 싸우며 폴은 주말마다 길에서 성서에 나왔을 법한 크기의 십자가를 지고 끌며 고행을 자처한다. 제이콥은 다 싫었다. 모니카는 제이콥의 농사가 성공하긴 어려울 거 같았다. 지쳐가고 있었다. 제이콥이 심장이 불편한 자식 데이빗보다 갓 수확한 농작물 상할까 봐 걱정할 때 모니카의 인내심은 방전된다.
순자는 아프고 쇠약해져 있었다. 거동이 불편했지만 모니카 가족을 위해 뭐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다. 부엌을 치우고 창고를 치우며 순자는 딸 모니카와 가족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싶었다. 모니카가 요청한 엑소시즘으로 그나마 걸을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이었다. 순자는 불을 피웠다. 쓰레기를 태우기 위해. 미나리는 물가에서 줄기를 뻗었지만 인공의 불길까지 저지할 수는 없었다. 바람이 거셌고 불길은 가족의 오랜 노력의 결실을 집어삼킨다. 제이콥의 땀, 모니카의 외로움, 순자의 모정과 아이들의 미래가 단숨에 잿더미가 되고 있었다. 데이빗(앨런 김)은 언젠가 회상할 것이다. 그곳에 먼저 살았던 어느 농부는 자살했다고. 아빠는 알고 있었냐고. 알면서도 우리 가족의 생계를 담보로 자신의 납득하기 어려운 꿈을 땀과 근력으로 밀어붙인 거였냐고. 당신이 신을 그토록 거부하는 바람에 우리가 이렇게 된 건 아니었냐고. 신이 아니라 당신을 원망한다고.
미나리는 고난의 정착기보다는 신을 거부한 자에게 가해지는 비극과 절망의 서사 같았다. 제이콥의 의도는 선했지만 타협을 몰랐고 신의 사자(폴)의 제언을 무시하고 거절했다. 상식적이었지만 달라진 환경에선 달라진 상식이 필요해 보였고 제이콥은 달라지지 못했다. 가족은 살아남긴 했으나 모니카에게 그것은 전부일 수 없었다. 가족이 같이 지내며 소박한 삶을 영위하는 게 제이콥에게 그토록 어려운 일이어야 하는지 모니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제이콥의 (부농의) 꿈은 지극히 이기적인 자아실현처럼 보였으니까. 불은 꺼지고 모두 지쳐 잠들었지만 순자는 눈을 감지 못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삶이었다. 미나리처럼, 질긴 생명력에게 닥칠 또 다른 불행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