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정말 마음일까?

요시타케 신스케 글 그림 / 양지연 옮김

by Glenn

그림동화 리뷰를 오랫동안 생각하는 동안 염두에 둔 독자는 부모나 아이들이 아니었다. 내가 여기에 쓰는 대부분의 글들이 그렇듯 사실 누구도 아니었다. 비슷한 나이, 경험, 지위, 현재 이런 것들로 층위를 가르고 독자를 구분 지을 수 없다고 여겼다. 세상의 많은 창조물들이 이런 과정을 간과하여 실패한다. (그걸 알면서도) 그림동화 리뷰는 기록 과정과 남겨두는 것 이상의 사전 기획을 하지 않았다. 해당 도서를 읽다가 비슷한 심정이 들었다면 잊고 있었는데 내 글을 통해 그걸 다시 떠올리며 아 그랬지 맞아 나만 느낀 게 아니구나 정도라면 충분했다. 가이드가 없는 게 가이드였고 가이드가 없어야 연재가 이어질 수 있다고 여겼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들은 이런 면과 어느 정도 맞닿아있다. 그의 그림은 다분히 아이들 독자를 떠올리게 하며 이 책이 놓일 코너를 정하게 하지만 글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이게 정말 마음일까?는 처음 서점에서 봤을 때 조금 넘기다 바로 집으로 가져왔다.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인간이라면 이 책이 말하는 이야기의 그물에서 도저히 빠져나갈 도리가 없어 보였다. 싫어하는 사람. 나는 이 화두가 나는 물론이고 (적어도 나와 비슷할지 모를) 여러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싫어하는 사람 때문에 싫어하는 감정이 생겼을 때 이를 도저히 다룰 수 없을 때의 소소해 보이지만 꽤 정성스럽고 다양한 대안들을 아이의 목소리로 슬쩍 제시한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급소를 가격한다. 어른들도 싫은 사람이 있구나. 모두 힘들구나. 나도 힘들어. 아무리 노력해도 친해질 수 없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체념한 어른들의 진실을 발설한다. 그리고 솔루션을 주는 듯하다가 같이 체념한다. 아이든 어린이든 싫은 사람은 싫은 사람이라고. 굳이 뭔가 (사회생활 안 해봤을) 세계적 현자들이나 깨달았을 지혜로운 문구를 설파하지 않는다. 싫은 사람과 싫은 감정의 존재를 내버려 둔다. 넌 죄가 없고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처세서가 난무하는 중에 이 책은 그냥 대자로 드러눕는다. 아 뭐 어쩌겠어. 싫은 놈은 계속 싫지. 방법이 없어. 그냥 인정하고 나 편할 길이나 궁리하자는 식으로 나온다. 이런 태도는 자포자기나 방관에서 나올 수 없다. 이 책은 오랫동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증오와 자기혐오에 빠져 있는 자들이 어떻게 고민하는지 면밀하게 바라보며 이를 어떻게 글과 그림으로 덜 심각하게 옮겨야 하는지 고민한 흔적을 보여준다. 이 책 한 권 만의 도움은 아니지만, 나 역시 강렬하게 싫어했고 지금도 잔향이 가시지 않는 대상(들)을 굳이 애써 용서나 망각으로 지우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어느 날 강물에 둥둥 시체가 떠내려올 일은 없겠지. 스스로에게만큼은 가면을 쓰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