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스콧 글 / 시드니 스미스 그림 / 김지은 옮김
타인들 앞에서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가장 참기 어려운 것들 중 하나는 초라한 자신을 확인해야 하는 일이다. 소년은 교실 맨 뒷자리에서 말할 일이 없기만을 기도했다. 소년은 자신의 입 안에 소나무 가지와 까마귀 울음소리와 달빛이 담겨 있음을 도저히 알릴 길이 없었다. 교실 아이들은 소년의 공포와 일그러진 표정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소년의 아빠는 강물 앞으로 그를 데려간다. 소년의 머릿속엔 교실의 악몽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폭풍과 빗물이 소년의 몸속 가득히 울렁거리고 있었다. 소년의 아빠는 소년에게 너는 강물처럼 말한다고 일러준다. 각성의 순간이었다. 평생 기억에 안고 가는 수많은 순간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소년이 자신의 말을 강물처럼 받아들였을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그 이후에 소년의 말이 모두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명료해지며 만인의 인정을 받은 건 아니다. 다만 소년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강물을 상상하며 용기 내어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런 변화는 하나의 순간만을 모면하게 만드는 게 아닐 것이다. 인생 전체를 대하는 태도를 뒤집어 놓았다. 소년의 아빠는 아주 오랫동안 고민하며 꺼냈을 그 말 하나로 깊고 낮은 외로움과 난처함으로 고생하던 아들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었다. 용기를 내준 소년에게 고마웠을 것이다.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상황을 극복해줘서. 타인 앞에서 말하기 어려운 이들이 모두 이런 극적인 변화를 겪을 수는 없다. 이런 아버지가 없거나 이런 용기를 낼 수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강물이든 태풍이든 아무리 떠올려도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용감한 강물이 되고 싶었겠지만 흙탕물을 만드는 비바람처럼 휘청거리다가 고개를 떨구곤 한다. 살아있는 한 남들 앞에서 말할 일은 끊임없이 생기기 마련이라서 어떻게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식과 정보를 섭렵하며 스킬을 익히고 용기와 중심을 잃지 않도록 지속적인 격려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넌 강물처럼 말하는 거란다...라고 말해줄 부모나 친구가 없거나, 있긴 있는데 저렇게 말할 스타일들이 아니라면 방법은 하나다.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어주는 수밖에. 내가 나의 조언자, 내가 나의 격려자, 내가 나의 친구, 내가 나의 부모, 내가 나의 강물이 되어줘야 한다. 현명한 주변인이 없다는 건 서글픈 일이지만 어쩌면 그런 현명함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자신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나의 편이라도 되어 주어 단단하게 잡아주고 보살펴주고 곁에 있어줘야 한다. 챙기는 일보다 미워하는 일이 더 쉬울 수도 있다. 그렇다고 쉬운 옵션만 선택하다가는 정말 남들에게 쉬운 사람처럼 낙인찍힐 수도 있다. 쉽게 무시하고 쉽게 평가하고 쉽게 대해도 괜찮은 사람. 그런 이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자신이 그런 사람인 걸 모르거나. 힘겨워하는 자식에게 강물을 알려준 아빠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 그에게도 자신만의 강물이 있었을까. 책은 긴 산문시처럼 읽힌다. 소년의 고립된 기분을 묘사한 활자들이 페이지에서 떼어져 나와 살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