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딱지 곰팡씨

레이먼드 브릭스 글 그림 / 조세현 옮김

by Glenn

곰팡씨는 괴물이다. 괴물 가족의 가장이고 신체 외형부터 주변 사회, 소속된 커뮤니티, 하는 일까지 모두 괴물이지만 성인 인간의 사고와 고뇌를 한다. 이야기는 전 페이지에 걸쳐 문명화된 인간사회와 정반대 개념의 위생관념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너무 디테일하게 지나쳐서 정성스럽고 거대한 은유이자 작가의 의도를 더 돋보이게 하는 위장처럼 보일 정도다. 곰팡씨는 가정과 직업에 충실하지만 복잡다단한 고민을 안고 있다. 침울한 기분으로 출근하고 반복되는 업무에 명분을 잃었으며 자식들도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러면서도 현재를 의심하는 자신의 태도를 경계한다. 스스로 행복하다며 세뇌한다. 그러다 또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자문한다.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적극적인 의문을 갖는다. 잠들기 전 아내에게 토로한다. 나는 왜 괴물이고 우리 자식은 왜 괴물이어야 하냐고 대체 왜왜왜 인간을 괴롭히며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거냐고. 다 듣던 곰팡씨의 아내는 경악한다. 훌륭했다는 곰팡씨 아버지를 이야기하며 상기시킨다. 곰팡씨의 고민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저 더 확산시키지 않았을 뿐이다. 독자가 8세라면 한 번에 납득하기엔 쉽지 않을 듯한 내용이다. 68세가 읽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곰팡씨의 끊임없는 의문은 현대인이 처한 하지만 절대 영영 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과 완전에 가깝게 일치한다. 깨달은 자들은 고민의 행위와 과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어디든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지만, 많은 이들은 고민의 미해결에 머리를 쥐어 뜯으며 다음날 그다음 날도 같은 고민을 반복한다. 이 고민들은 현재에서 시작되었지만 오래전 과거부터 이미 존재했고 내가 왜 지금 여기서 이러고 살아야 하는지 근원적인 질문의 파편을 무수히 뿌리지만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다. 비슷한 처지의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관심 없거나 질문을 갖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현시대 노동자 같은 곰팡씨나 곰팡씨 같은 현시대 노동자는 외롭다. 만인의 고민 같지만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다. 해결책이 마땅치 않아 암묵적인 금기에 가까운 고민이기도 하다. 조상들의 정착 서사와 무수한 선택이 얽혀있고 개선되지 않는 상황 역시 문제의 무게를 가중시키며 공론화시킨들 침묵의 공기만 조성할게 훤하다. 관점의 차이라는 말은 얼마나 기만적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답다는 말은 어찌나 공허한가. 곰팡씨는 내일도 다시 출근하여 이유도 모른 채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과를 진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