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레나 맥아피 글 / 앤서니 브라운 그림 / 허은미 옮김
케이티는 아빠와의 일상을 사랑했다. 이따금 엄마와 주말을 보냈지만 대부분 아빠와 함께 보냈다. 그게 좋았다. 케이티의 이런 평범한 천국은 두 불청객과 함께 종말로 치닫는다. 주말을 빼앗긴다. 성인 여자와 남자아이, 둘은 케이티의 아빠를 빼앗아가고 있었다. 시끄럽고 무례하게. 마침내 불청객들은 집으로 쳐들어와 자릴 차지한다. 아빠가 싸주던 도시락은 바뀌었고 집은 더러워지고 있었다. 케이티와 아빠와의 시간은 더 이상 둘만의 것이 아니었다. 케이티와 아빠 사이엔 어떤 시끄러운 아줌마와 그의 아들이 있었다. 아빠와 아줌마는 둘이 외출하기도 했고 그때 케이티는 변화를 실감한다. 케이티는 이런 불편과 불만에 대해 아빠와 공유하고 곧바로 집은 텅 비워진다. 모든 것이 되돌아갔다고 여겼지만 아빠는 말수가 줄었다. 케이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실감과 마주한다. 있다가 없게 된 두 사람을 떠올린다. 책은 케이티가 그 두 사람의 흔적을 그리워했다고 적는다. 다시 만날 순간을 한껏 고대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원제는 the visitors who came to stay. 번역된 특별한 손님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그들은 시종일관 침입자의 행태를 띄지만 케이티는 그들의 빈자리를 그리워한다. 좀 더 생각해보면 케이티의 그리움은 아빠와 둘이서 이루지 못했던 원형의 가족에 가닿아 있다. 엄마와 같이 살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아빠에 더 의지하지만, 새로운 두 사람의 등장으로 대안가족이 형성된다. 시끄럽고 낯설지만 케이티는 어쩌면 그런 시끄럽고 낯선 분위기에서 새로운 안정감을 발견한 것일지도 모른다. 집은 더러워지고 좁아지고 시끄러워지고 자신의 영역이 좁아지고 기존 멤버인 아빠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줄었지만 케이티는 이런 불편한 변화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그리워했던 (낳아준 엄마까지 3인이 같이 살던 시절에 최초로 학습했던) 가족의 외형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고 여기게 된다. 흔한 헐리웃 스릴러 영화처럼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입장을 바꾸며 아빠가 실종되고 아줌마가 케이티를 지하실에 가두지 않는 이상 케이티의 호기심 가득한 가족 연습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다. 이야기는 순전히 아이의 관점으로 진행되고 해석과 반응에 전적으로 무게를 둔다. 도로시와 함께 읽어온 해외 동화에는 이런 설정의 가족이 자주 등장했다. 부모 중 한 명과 살며 주말에만 다른 부모를 만나거나 조부모 중 한 명과 이별하게 되거나 부모 중 한 명이 다른 성인으로 바뀌거나 내부 사정으로 인해 친척집에 맡겨지거나 등등, 현실적인 환경의 변화 속에서 아이는 고뇌와 선택 속에서 다양한 고비를 겪으며 성장과 멈춤을 반복한다. 케이티의 이야기는 그중 하나였다. 완전히 결론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멈춘다. 달라진 가족 구성원은 달라진 이야기를 생성하게 된다. 케이티의 엄마가 어떻게 분리되었는지 알 수 없고 알고 이해한들 다시 아내와 엄마의 기존 역할로 복귀할지는 미지수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 구조는 쉽게 파악될 수 없고 솔루션을 내리기 조심스럽다. 케이티의 가족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 대안 가족까지 이르렀을 것이다. 케이티의 막연한 행복을 바라는 걸로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좀 더 미안해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