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즈&이어즈, 느리게 가라앉는 미래

사이먼 셀란 존스, 리사 멀케이 감독. 이어즈&이어즈

by 백승권

내 딸은 자신을 디지털화하고

몸을 폐기하고 싶다는데 뭔 말인지 모르겠다

뇌를 다운로드한다나?


눈 뜨고 보기 힘든 세상이지만

한시도 놓치고 싶지 않네요


애가 태어난 순간부터

온갖 기기를 쓰게 해줬잖아.

우리가 자초한 거야.


아주 천천히 익사했어


괴물 하나를 없앴다는 건

또 다른 괴물이 깨어났다는 걸 의미하지



이어즈&이어즈의 이야기는 현재와의 경계가 없다. 다양한 궁금증은 필연적이었다. 작가의 인종은 무엇인가. 제작진의 국가별 비중은 어떻게 되나. 작가의 정치적 성향은 극에 영향을 미쳤는가. 중국과 러시아의 투자 지분이 있는가. (얼토당토않아 보이지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도 어렵다) 방영 당시 미국 정치권의 가시적인 반응이 있었나. 다문화 후손을 둔 여성(앤 리드)과 그렇지 않은 여성 리더(엠마 톰슨)의 대립 구도로 볼 수 있나. LGBTQ에 한없이 열려 있는 태도와 불륜 사이에 참담한 경제적 몰락이 있는 이야기 구조는 여전히 설득력 있나. 영국은 과거 세계를 지배했던 국가로써 스스로를 현재 비극을 초래한 원죄를 지닌 가해자로 인지하는가.


딸을 잃은 장년의 백인 여성, 금융권 백인 남성(로리 키니어)을 남편으로 둔 지적이고 패셔너블한 흑인 여성(트니아 밀러), 중국계 자녀를 두었고 휠체어로 이동하는 백인 여성(루스 메딜레이), 전 세계를 넘나들며 환경보호 활동가로 활동하는 백인 여성(제시카 하인스), 국제 난민을 관리하고 동성 연인을 둔 백인 남성(러셀 토비), 이들은 한 가족이다. 지나치게 드라마틱하게 보일 정도로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다. 이런 연대의 중심엔 엄마의 죽음이 있다. 이 가족의 어른은 할머니이고 할머니는 그냥 할머니가 아니다. 다양한 타입의 구성원을 하나로 보듬고 가족 행사의 참여를 독려하며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는 리더이자 집주인이다. 이들은 일 년에 한두 번씩 모두 모여 생일을 축하하거나 새해를 맞이한다. 서로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어디서든 연결되어 있고 걱정하며 응원하고 사적인 영역을 존중한다. 하나의 국가처럼 보인다. 겉으로 보면 평화롭고 들여다보면 차별과 비극이 난무한다.


이들의 공동 영역이자 국가인 영국은 가상의 근미래지만 현재의 복제 형태를 지닌다. 이들은 같이 뉴스를 보며 서로 다른 정치적 지지를 확인하고 각자 다른 희망을 품기도 한다. 그리고 난민 중 한 명이 구성원의 애인으로 이 가족 속으로 합류한다. 그는 가족에게 버림받은 것도 모자라 가족에 의해 생명과 존엄이 완전히 끝장날 위기에 처한 이였다. 애초 다양성에 대한 한계 없는 관점을 지니고 있는 이들에게 난민 청년은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난민의 지위는 늘 위태로웠고 영국 정치의 지각변동에 따라 추방되고 만다. 그의 연인은 사랑과 평화를 가족의 품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목숨을 건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그 방법엔 자신의 목숨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인 백인 남성이 사망한다. 가족들의 충격과 슬픔은 묵음 처리될 수 없었다. 난민은 백인 가족의 도덕적 우월성을 드높이기 위해 활용되기엔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위험을 안고 있었다. 이후 난민 청년은 보복당한다. 아우슈비츠를 떠올리게 하는 수용소로 끌려간다. 붕괴된 경제 상황에서 가족 상실의 분노는 사회적 최약자를 향하고 있었다. 이 분노는 정당하지 않고 합리화될 수 없었다. 위선은 금세 추악함으로 돌변했다. 난민 청년은 사랑도 잃고 새 가족도 잃고 바이러스 가득한 수용소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는 도움받을 처지에 놓였다는 이유만으로 모두의 증오를 떠안아야 했다. 단 한 번도 영국인 가정에서 중심 화자가 된 적 없었다. 사랑받을 때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을 때에도 상실이 닥쳐왔을 때에도 그는 타인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서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존재 같았다. 영국인들은 그를 사려 깊게 대했지만 모든 태도 속에는 난민이 자신이 출신이 어딘지 한시도 잊지 않게 하고 있었다.


이어즈&이어즈는 거대한 폭풍우 속에서 냉정한 관찰자 역할만 고수하기를 포기한다. 할머니의 입을 빌어 현세대에게 일갈한다. 남 탓하면서 넋 놓지 말고 지구가 끝장나서 모두가 끝장나기 전에 어서 움직이라고. 다수를 위해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핑계대면서 모든 상황에서 피하려고 하거나 부정적인 언변으로 모든 상황을 곡해하려 들지 말라고. 투쟁과 저항, 참여와 연대를 주창한다. 이를 위해 과학 기술은 막연한 적대적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인다. 얼굴을 가리고 안구를 갈아 끼우고 통신을 위해 혈관처럼 침투하긴 하지만, 맘에 들지 않은 집단과 한 인간의 운명을 드래그 하나로 참살할 수도 있지만 기술에 완전히 등 돌린다면 투쟁과 저항의 힘도 그만큼 약해질 거라고 휴대폰을 일제히 들고 부조리를 고발하는 사람들을 통해 표현한다. 일상을 장악하는 과학 기술은 이미 공기와도 같고 이를 거부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닐 거라고.


핵이 발사되고 금융시장이 붕괴하고 난민이 탄 보트가 바다 한가운데서 뒤집히고 업무 자동화로 회사에서 잘려도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다투고 헤어지고 새롭게 만나기도 한다. 죽음의 정의는 바뀐다. 육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 데이터가 옮겨지는 것으로. 살아있던 시간의 지식과 정보는 남은 자들과 앞으로 살아갈 자들을 위한 자원이 된다. 저장공간과 저장 방식이 유형에서 무형으로 바뀌는 셈이다. 비가시적이지만 다수를 안심시키기 위해 굳이 선과 면 빛을 그려 넣어 유형처럼 보이게 만든다. 해가 계속 바뀌어도 같은 시간 불꽃은 계속 터지고 누군가는 태어나 울고 둘러싼 사람들은 기뻐하며 축하하고 파티를 즐긴다. 그러다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되면 인간은 괴물이 되어 서슴없이 복수한다. 환경과 기술이 바뀌어도 타고난 본성은 바뀌지 않으니 사람들은 결국 비슷한 이유로 죽어간다. 익사를 묘사하는 장면이 가장 잔혹하고 침통했다. 파도가 일면 바닷물을 좀 더 삼키고 그러니 빠른 과정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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