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노년에 대한 공포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올드

by 백승권

발라 모굴리스(Varar Morghulis). 죽음은 생의 수순이다. 가장 예상 가능한 건 자연사다. 노화는 끊임없이 죽음을 상기시킨다. 필립 로스가 에브리맨에 쓴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대학살이다.'는 끊임없이 인용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추상과 관념, 지식과 정보가 아닌 실존의 영역으로 멱살을 잡고 끌고 와 목구멍에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존재감이 아닌 질감과 질량으로 압박한다. 깨달은 소수가 자신의 나이 듦을 긍정과 찬사로 감싸기도 하지만 공감의 파장은 멀리 나아가지 못한다. 대다수에게는 그렇지 않으니까. 운동과 화장으로 저항할 뿐이다. 끼니에 좀 더 신경 쓸 뿐이다. 삶이 아름답다는 주장이 허공에서 부서질 때 노화와 죽음은 팩트로 날아와 뼈마디를 부순다.


이곳에서의 30분은 우리 생의 1년과 같아요.


생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인간은 수많은 사건과 마주한다. 피한다고 해도 (살아있는 한) 다른 경로를 선택할 뿐이다. 다른 선택은 지금 처한 상황보다 더 나은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전제를 둔다. 이를 위해 빠르게 분석하고 이익을 계산하며 도구를 찾거나 협력자를 물색한다. 과거의 학습을 뒤지거나 비슷한 경우를 뒤지며 안정을 찾으려 애쓴다. 정신과 신체를 잇고 다음 상황으로 나아간다. 부정적 변수의 발생을 최소화한다. 새로운 시간, 새로운 배경,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최대 안정 최대 이익을 꾀한다. 이를 반복하면 본능이 된다. 다시 겪게 될 때 반사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선택으로 더 빠르고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납득할 수 있다면. 납득과 이해의 여지가 있다면. 새로운 상황이 최초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새로운 상황이 노화의 가속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새로운 상황이 6세 자녀가 느닷없이 12세가 된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1시간이 지날 때마다 신체 나이가 2살씩 늘어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낯선 해변에서 그들은 죽음을 인지하기도 전에 죽어 썩고 있었다.


최초의 혼란과 경악 속에서 무리는 서로를 도륙하고 탈주를 시도하다가 대다수 목숨을 잃는다. 아이 노인 할 거 없이 뼛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려 바다에 스며든다. 광속의 노화 사태 속에서 깨달음은 너무 늦었고 체념과 후회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빠르게 늙고 더 빠르게 죽을 뿐이었다. 모든 저항은 실패했다. 이건 심판도 재앙도 아니었다. 진위를 파악하는 것은 생존자와 남은 인류에게 어떤 여파도 미치지 못했다. 잠깐의 뉴스였을 뿐. 고통과 절망 속에서 죽은 자들은 파도와 바람이 쓸고 갔고 기이한 저주의 물살을 뚫고 겨우 살아남은 자들은 정상 속도가 된 노화에 안도할 뿐이었다. 조작된 노화의 광풍 속에서 깨달음은 없었다. 대체 왜 우리한테 이런 일이 생겼지? 라며 자문할 시간조차 무의미했다. 그 시간에도 노화는 진행되고 있었다. 아기는 노인이 되고 노인은 뼈와 먼지가 되고 있었다. 발라 모굴리스(Varar Morghulis). 죽음은 생의 수순이다. 평균 속도의 자연사 만을 겨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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