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감독. 해피 투게더 리마스터링
뽀뽀, 잘 자!
요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다. 이과수 폭포를 보러. 폭포가 아니더라도 둘은 어디든 갔을 것이다. 몸이 엉키고 시선은 늘 서로에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돈은 없었다. 이국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방세를 내고 허기를 채우고 연인의 담배를 사주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요휘는 일상의 많은 시간을 일을 하는데 바쳐야 했고 보영은 아무렇게나 살았다. 넓지 않은 공간 하나의 침대 하나의 작은 소파에서 지내는 동안 둘은 목이 터져라 싸우고 서로를 공격하며 뒤엉켰다. 헤어졌고 괴로웠으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마주치고 피하다가 다시 한방을 쓰기로 했다. 달라진 건 없었다. 보영은 아무렇게나 살고 요휘는 식당 설거지를 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요휘는 보영에게 너 인생 똑바로 좀 살라고 훈계하지 않았다. 돈을 벌어오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늘 그 자리 자기 옆에 있으면 그만이었다. 일하다가 전화를 오면 투덜대며 받았고 그게 좋았다. 꼭두새벽 배고프다면 음식을 해주고 담배가 떨어졌다고 하면 나가서 와르르 사다 줬다. 보영이 원하면 아무리 추워도 같이 조깅을 했다. 요휘가 보영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은 동네 꼬마가 잠깐만 봐도 알 것 같았다. 보영이 원하는 게 뭐든 요휘는 다 해줬다. 보영은 미취학 아동 같았고 요휘는 누나 엄마 같은 선량한 보호자 같았다. 둘은 싸우고 보영은 다시 사라졌다. 요휘와 같이 일하는 장(장첸)은 요휘에게 사려 깊었지만 더 다가가지 않았다. 요휘 안에 요휘보다 큰 거대한 존재가 요휘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장은 같이 일하며 오랫동안 알 수 있었다.
요휘는 떠난다. 이과수 폭포에 혼자 간다. 둘이 같이 오고 싶었는데.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고 홍콩으로 돌아간다. 보영은 빈 방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돌아온 곳에 요휘는 없었고 문을 열어두어도 요휘는 돌아오지 않았다. 요휘는 방을 떠나며 소리 없이 울었지만 보영은 요휘 없는 빈 방에서 소리 내어 엉엉 운다. 운다한들 바뀌는 건 없었다. 우연을 바랄 순 있겠지만 거기까지인 인연도 있었다. 시끄럽고 눈부신 홍콩으로 돌아온 요휘는 장의 흔적과 마주한다. 언젠가 장도 만날 수 있겠지. 아마 보영보다 재회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요휘와 장이 요휘와 보영과 같은 관계가 될지는 모를 일이다.
성실하게 일을 하며 먹고 살려는 요휘와 한탕주의와 유흥에 빠진 보영은 불평등한 관계다. 헌신과 착취로 유지되는 관계는 늘 불안하고 언제든 끊어질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보장된 미래가 없다. 미래를 보장하려는 노력도 없다. 현재를 살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당장 놀고먹으려는 서로 다른 방향의 시도만 있을 뿐. 시작부터 녹음기에 입을 댄 소리 없는 절규와 빈 방에서 혼자 엉엉 우는 끝을 예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의 사랑이라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건 그저 기약 없는 이별이었다. 예쁜 순간들은 많았지. 하지만 기억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밥을 먹으려면 설거지를 하고 호객을 해야 한다. 요휘는 그걸 알았고 보영은 요휘의 피를 빨며 살았다. 보영도 이과수 폭포에 홀로 갔을지 모르겠다. 아마 갔더라도 천지를 요동치게 하는 물살 속에서 엉엉 울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