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규 감독. 행복의 나라
열차가 온다. 선로에 선 두 명. 민수는 구조된다. 진우는 사망한다. 민수를 구하다가. 진우는 죽어서 용감한 의인이 되었고 민수는 살아서 자살 실패자가 되었다. 민수(지용석)는 이후 결혼을 했고 민수 아내(김시은)는 임신을 했다. 진우 엄마 희자(예수정)는 아들 기일에 민수를 매년 초대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에서 토시코가 실행했던 죽은 아들이 살려낸 자에 대한 어미의 길고 집요한 복수였다.
진우가 살린 민수 역시 누군가의 아들이겠지만 내 아들은 아니다. 내 아들 진우는 죽었다. 희자가 원한 건 진우의 영생이 아니었다. 그저 모나지 않은 삶이었다. 진우 대신 죽을 사람이 필요했다면 백만 번 천만 번 자신이 나설 수 있었다. 진우가 죽을 곳은 지하철 선로가 아니었다. 진우를 죽게 할 것은 멈추지 못한 열차가 아니었다. 진우에게 바란 건 용감한 시민 영웅이 아니었다. 진우가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민수가 아니어야 했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 했던 민수를 구하려고 따라 내려간 사람이 진우가 아니어야 했다. 민수를 살렸다면 진우를 살릴 시간도 있어야 했다. 진우가 우리 진우가 내 아들 진우가 열차에 치이고 있었다. 민수를 구하고 자기는 열차에 치여 죽고 있었다.
진우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지하철 CCTV 녹화테이프를 희자는 재생 한다. 희자의 삶이 거기서 멈춰 있었다. 희자는 지하철을 자주 찾았다. 진우를 보려고. 진우가 떠난 곳으로 가려고. 진우처럼 가려고. 진우의 마지막 고통을 느껴보려고.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죄인이야. 진우에게 미안해서. 진우가 죽은 순간에 아무것도 못해줘서. 못해준 것만 생각나서. 스크린도어를 때린다. 강제로 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때 이게 있었다면 진우는 그렇게 되지 않았겠지. 민수도 내려가지 못하고 진우도 그렇게 죽지 않았겠지. 왜 그때 이게 없어서 내 아들은 죽었고 왜 지금 이게 생겨서 나는 죽지 못하나. 민수는 왜 살아있나. 그때 민수만 죽었다면 진우는 안 죽었을 텐데. 그때 민수가 없었다면 지금 밥상에서 같이 국을 떠먹는 건 진우일 텐데. 민수가 결혼을 하고 아내가 임신을 해서 애가 나온다고? 진우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CCTV와 제사상 사진으로만 박제되어 있는데 애초 죽으려 했던 민수는 남들 다하는 결혼에 애기까지 더해서 가족을 이룬다고? 그럼 우리 진우는? 진우의 삶은? 그건 진우 거였는데. 그런 삶, 우리 진우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남들처럼 좋은 여자도 만나고 결혼도 하고 집도 꾸미고 직장도 다니고 아기도 낳고 이렇게 종종 가족들끼리 모여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하하호호 떠들고 손뼉 치고 웃었을 텐데. 진우야. 내 아들 진우야 어디 갔니. 왜 민수가 저기 와있는 거야. 왜 저 자식이 내가 끓인 국을 자기 아가리에 처넣고 있는 거냐고. 왜 저 놈을 구했니. 왜 네가 살아야지 지가 뒤지려는 저놈을 구했어. 왜 구하고 네가 죽었어. 너도 원망하고 있지? 너도 억울하지? 안다 원통하고 원통한 거 내가 다 안다. 진우야 이 어미가 갚아줄게. 내가 민수 괴롭혀줄게. 너 그렇게 보내고 저놈 두 다리 뻗고 자는 거 나는 못 본다. 너는 사지가 부서져 떠났는데 저놈 하루라도 맘 좀 불편한 게 뭐 그렇게 억울하겠냐. 난 저놈 하루라도 너 떠난 곳으로 아니 불지옥이라도 보내고 싶단다. 저놈 하루 이승에 발붙이는데 네가 누려야 할 삶이라고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고 또 무너진다. 내 아들 진우야, 어미는 민수를 죽이고 싶단다. 너도 그러니?
부모에게 자식의 죽음은 체념의 대상이 아니다. 희자는 민수 영정 사진을 보며 미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