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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Mar 07. 2024

동거

선우정아. 동거, 도망가자

2021년 8월 JTBC 바라던 바다에서 선우정아(존칭 생략)의 도망가자(2019년 발표)를 듣고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거짓말이다. 과거형이 아니다.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해 수십 번 돌려보고 음원으로 듣고 그러고 있다. 해독제 같은 가사들. 낭떠러지 절벽에 뒤꿈치를 걸어두고 지르는 듯한 결사적인 목소리, 떨림, 불안, 절망, 체념, 겹겹이 쌓인 어둠 속에 파묻혀 잘 보이지도 않는 감정과 기억의 생채기들의 멱살을 잡고 끌어올려 수액을 꽂고 산소호흡기를 채우고 체온을 내리는 주사를 놓고 있었다. 헐리웃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인질극에서 범인이 만약에 한국 정서를 안다면 이 노래를 틀어주면 울면서 인질 풀어주고 자수할 것 같은 파급력이 있었다. 너 잘못도 있으니까 니가 좀 참아라. 버티면 좋은 날이 온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사람들에게 시종일관 온오프라인 360도 둘러싸며 이 따위 소리만 해대는 각박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는 얼어붙은 피부를 데우며 먼지를 씻겨 내리는 조도 낮은 집 늦은 저녁의 고요한 샤워 같았다. 흐느낌과 울음을 대신 감춰주는. 어디로 돌아와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도망부터 가고 아주 가버리진 말자라는 다짐을 읊조리게 해 줬다. 개인의 상처는 개인의 심장 개수와 같을 텐데 하나의 노래로 잠시 각자의 통증을 (덮거나) 잊을 수 있는 기이한 효능을 발휘했다. 돌아오려고 들은 게 아니라 이 노래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환각성이 강하고 온몸과 표정을 어쩔 줄 모를 정도로 변화무쌍하게 휘두르며 극단적인 처방전을 써주는 아이돌 가사와 (당연히) 조금 결이 달랐다. 목에 건 줄을 다시 걷어내어 주고 있었다. 면도날을 내려놓게 하고 있었다. 새벽 호수로 가려던 발길을 되돌리고 있었다. 이런 표현들이 과장이었으면 좋겠다.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는 생명을 붙드는 완력으로 다수를 구하고 있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수일 전부터 동거(2021년 발표)를 듣고 있다. 동거 이외의 곡을 듣지 않고 있다.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보다 동거 재생 시간이 더 길다. 별다른 동기나 맥락은 없었다. 도망가자를 듣다가 선정아 플레이리스트를 듣다가 동거가 들렸고 한곡 무한반복으로 설정을 바꿨을 뿐이다. 새벽 출근하며 듣다가 온몸이 완전히 감겼다. 도망가자가 구명줄이었다면 동거는 구스다운 이불과 커다랗고 폭신한 베개로 돌돌 말린 침대였다. 덮으면 벗어날 수 없는 온기와 입김, 촉감으로 가득한, 하지만 혼자 남겨진, 플래시백으로 가득한 빈방. 검은 거울과 입 속에서 사라지는 혼잣말, 구겨진 옷들, 켜지 않은 조명, 몇 끼를 걸렀는지 기억나지 않은 식사, 며칠 째 확인하지 않은 시간, 동거는 동거를 간절히 고민할 정도로 관계의 긴밀한 접촉과 시공간의 연결을 갈망했지만 (결론적으로 실행에 다다르지 못한) 현재에 대한 소회를 그리는 듯 보인다. 간절하지만, 간절한 만큼 멀어진 의도처럼 읽힌다. 그래서 더 아련하다. 가녀린 그리움과 이루지 못한 이룰 수 없는 소원으로 끝없는 읊조림으로 이어진다. 이런 곡들은 4분 25초로 끝나지 않는다. 4년과 25개월이 더 지나도 희석될 줄 모른다. 소리에서 텍스트로 이미지로 새겨지고 각인된다. 선우정아가 발표한 (애플뮤직에 공개된) 유사한 무드의 거의 모든 곡을 들어봤지만 아직 동거만큼 구체적인 아우라가 사라지지 않는 곡은 발견하지 못했다.  


도망가자와 동거의 논리적인 연결성은 없다. (이 글은 동거의 뮤직비디오를 보지 않는 상황에서 쓰였고 원작자의 의도와 다른 맥락과 해석에 대한 한계가 명확하다) 하지만 연결하고 싶다. 자주 듣고 싶은 곡들의 업데이트가 점점 더뎌지는 상황 속에서 선우정아의 도망가자와 동거는 소중하기 그지없다. 두 곡은 뫼비우스의 띠 안에서 서로의 꼬리를 잡으려 손을 뻗는다. 힘들어서 도망가고 돌아오고 잠시 격정적인 한 몸이 되고 다시 혼자가 되고 그래서 힘들고 도망가고 싶을지도 모르고... (망상) 굳이 이야기의 연결성을 작위적으로 이어 붙이지 않아도 선우정아라는 목소리를 통해 장대한 1부와 2부로 나누어 해석할 수도 있다. 또는 동거를 원하는 자아와 도망을 원하는 자아라는 양분된 입장으로 볼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두 곡은 독립적으로 충분하다. 동거를 몰랐을 적엔 도망가자를 깊이 들었고 지금은 동거만 듣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도망가자는 연약하고 희미한 희망으로 끝나고 동거는 아무리 애원해도 영원히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로 맺어진다. 동거를 반복해서 듣는 지금도 '춥게 해', '있잖아 난 너를 아직도', '시간이 낡았고', '여긴 완전히 둘의 세계', '여전히' 등의 가사들이 지나갈 때마다 심박수가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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