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by 백승권

이것은 절망과 불행에 대한 예언이 아닙니다


현재는 답이 없고 미래는 보이지 않아요

확신은 의미 없고 과거의 지식은

과거에 머무르고 있어요

망설이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정의할 수 없는 것들로 순간이 채워집니다

우리는 지금껏 아는 것들로

중력을 버티고 있다고 여기겠지만

이미 착각에 마취되어 쓰러진 채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진 것일지도 모르죠


자신을 규정할 수 있다면 출처는 어디일까요

학습, 세뇌, 합리화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사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알고 보니

눈을 감고 걸어간 벼랑 끝에서 뒤꿈치로 겨우

지탱하고 있는 걸까요. 거대한 바람을 등에 맞으며


인내와 노력은 무엇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최적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아무도 안 다치는 선택일까요

아무도 안 다치는 선택은 누구를 다치게 할까요

그게 선택의 주체라면 그런 선택이 옳을까요


결심이 서면 변화가 닥칠까요

변화가 닥치면 모든 대화가 리셋될까요

대화가 사라진다고 기억이 무효가 될까요

촉감이 무뎌질까요 웃음이 지워질까요

울음이 그칠까요 우리가 흩어질까요


과거가 현재를 가능하게 했을 텐데

미래는 왜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을까요

어떤 변화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고

어떤 변화는 제발 오지 않길 기도하게 될까요


우리의 미래를 그저

좋은 날 나쁜 날 이상한 날로

미리 박스에 담아둘 필요가 있을까요


아직 풀지 않은 선물상자로

가득 채워두는 것은 어떨까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을지라도

좋은 선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잔뜩 묻어있고 만에 하나

좋은 선물이라도 들어있는 상자라면

잊을 수 없이 좋은 날이기도 되겠죠


그동안 우릴 지켜온 건

두려움인지 기대인지 운명인지

둘 다일까요 그저 운일까요

아니 넷 다일까요


끝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오늘은 어차피 끝날 예정이었고

내일은 어차피 시작할 예정이었어요


못다 한 말이 평생 쌓이면

분량이 얼마나 될까요


여름은 여름밤보다 길까요

우리는 우리를 기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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