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이 좀 떨어진다고
근사한 단어들이
구름에서 분리되어
손등을 적시는 일은 없고
냉소에서 적당히 멀어지려
바늘과 실로 문장을 기워내고 있지만
이미 찢어진 시간이 온전히 봉합될 리 없고
바보들과의 대화가 무효가 되는 건 아니에요
너무 많이 쏟아지네요
어둡고 흐릿하고 축축하고
느리고 흔들리고 찝찝하고
이런 날씨 속에서는
어떤 장면에 서 있던 우는 사람이
떠올라요
사랑하는 사람이 비 오는 날 죽어서
비 오는 날마다 교통정리를 하던 사람
비가 많이 오면 우는 게 덜 보여서
교통정리를 하는 내내 울던 사람
요즘은 타인의 구체적인 불행을
더 많이 떠올리고 있어요 그래야
내 불행 위로 그림자가 생겨 티가 안 나니까
눈물은 아깝고 남은 건 살의뿐
나 말고 모두가 내가 모르는 언어를 쓰고
못 알아듣는 내가 언제든 내버려질 수 있는 공포를
어린 그는 어떻게 견디고 만인의 두려움을
헤아리며 맨 앞까지 스스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을까
보이지 않아도 방향을 잃지 않는 법은
타고난 걸까 가르쳐 준 걸까
버린 자를 어떻게 잊고 다시 태어나게 해 준
이들을 배신하지 않았을까
어제 인터뷰집에서 읽은
플뢰르 펠르렝의 잔상이 여전히 진합니다
내가 그였다면
인생 전체를 장마라고 여겼을 텐데
타고난 육체와 정신은 조상들의 복제품에 가깝고
새로운 모든 환경은 예측불허 변수로 점철되었다면
자유 의지라는 말이 얼마나 우스운가요
정신병원 환자들에게 희망 주입하려고 만든
판타지 주술에 가까운 단어 아닌가요
저는 요즘 실내에서도 좁은 공간을
혼자 걸으며 혼자 웃고 있는데
미친 척하는 건지 미친 건지
괜찮은 척하려다 미친 건지
내 신세가 어처구니없어서 미친 건지
헷갈려서 조금 미치겠고 계속 웃어요
한글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에요
모국어가 침묵이라면 저는
텅 빈 페이지로 채워진 책만
수십 권을 써야 했겠죠
비겁하지만 불행을 떠올립니다
타인의 불행, 누군가 나보다 더 불행하길
맞는 이야기지만 이럴 땐 제가 사탄마귀 같죠
아이들은 행복하면 좋겠어요
어른이 되면 죄를 배우겠지만
그전까지는 웃기만 해도
천 개의 태양처럼 주위를 밝히니까
보고 싶어요
나보다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자학과 자조의 습관은 참
고쳐지지가 않네요
또 쓸게요
비 안 그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