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iac fandom*

by 백승권

애초 제 것이 아니었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었겠구나 라는 가정

그게 아닐 수도 있었겠구나 를

되돌릴 수 있을까 하는

익숙하지 않은 후회, 서걱거리는 기분


제 것인 게 있나요 (있었나요)

지금(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내겐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걸 깨달을 때가 너무 진절머리 나요

겨우 잊고 묻었는데


다른 삶 다른 우연

다른 것들이 다가온 후에야

제가 그동안 얼마나 정교한 세뇌로

스스로를 길들였는지

(마치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것처럼)

알게 되었어요 모르고

살았으면 그런대로 살았겠죠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으니까

누구의 계획인지, 태어날 때부터

예정되었던 순서인지


인생이 단 한 번이라고

알고 있는 게 거짓말 같아요

게으른 사람들 삶에 긴장감 부여하려고

괴벨스 같은 자의 후손들이 짜놓은 덫 아닐까

인류의 일부는 여러 번 누리고 있던 건 아닐까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 없이 지내왔어요

그런데 고드름이 녹은 물이 떨어져 바위를 깼는지

그 바위 안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

알에 금이 갔어요. 금기가 담긴

알껍질이 깨지고 있어요

뭐가 나오고 있는 줄 모르겠어요


너무 춥다가

너무 더워져서

모든 게 이상해졌다고

믿고 싶은 건지


애초 제 것이 아니었다고 믿고 싶지 않아요

제가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지

그것을 숨기려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짓을 오랫동안 해왔는지

저보다 더 잘 알거나 그래서

저보다 더 모를 수 없겠죠


가질 수 있다면 갖고 싶어요

볼 수 있다면 보고 싶어요

포기한 시간이 어떤 보상이 될 수 있을까요

인내가 이토록 쓴데 열매가 어떻게 달까요

농장 노예들의 피땀을 착취하려는 시도들 같아

스스로를 그만 착취하고 싶어요

정당한 욕망과 갈망을 해소하며


애초 제 것이 아니었다니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나요

진짜 제 것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아쉬울 리 없을 텐데


꿈이 길어지면 그건 현실이죠

깨더라도 어차피 현실일 텐데

꿈같은 현실과 현실 같은 현실

후회 같은 게 예정되었을 리 없어요

새로운 나로 갈아입은 지 오래되었고

기존의 나는 낡은 상자에 넣어

잠갔어요



*강박적인 팬심. 캐서린 번하드 전시 설명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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