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레빈슨 감독. 더 위자드 오브 라이즈
본 법정은
피고인 버나드 L. 메이도프에게
징역 150년 형을
선고하는 바입니다
AI 이야기로 귀가 아프다. 세기말 같은 압박 속에서도 아무 대비하지 않고 있어서 일거다. 속이 울렁거리기도 한다. 뉴스를 애써 회피하지는 않지만 체감상 코로나 시기 때 코로나 관련 뉴스보다 더 많이 들리는 것 같다. 돈과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AI=돈, 돈=모든 것이니까. 사기꾼들이 이미 판치고 있을 것이다. 늘 그렇듯 트렌드는 마케팅처럼 사기 범죄의 핵심 도구라서. (마케팅이 사기라는 말이 아니다)
모든 범죄의 시작과 과정이 그렇겠지만 사기 범죄는 특히 기이하다. 피해자의 신뢰를 적극 이용한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신뢰가 범죄를 완성하는 축으로 해석될 정도다. 신뢰 단계를 거쳐야 실행으로 이어지니까. 유도된 신뢰지만 실행의 동의로 여겨질 경우 피해자는 피해 결과를 자기 탓으로 돌릴 가능성이 높다. 이후 의도와 절차의 세부를 따지면 가해와 피해가 구분되지만 사기는 마치 신뢰라는 안전핀이 필수적으로 뽑혀야 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사기 범죄 완성 = 가해자의 범죄 의도 + 피해자의 신뢰'처럼 단순한 구조로 읽히기도 한다. 이는 식견이 얕은 자(나)의 의견이며 법리적인 판단은 크게 다를 것이다.
폰지 사기 범죄자 버나드 메이도프는 세계 최초 전자 주식 거래 플랫폼 나스닥의 시초인 '전자 주식 거래의 선구자'였다. 한때 미국 주식 거래의 90%가 그의 회사를 거치기도 했다. 시스템의 창조자이자 시장 거래의 독점적 지위를 지닌 자였다. 2009년 그는 폰지 사기 범죄로 법정에 선다. (당시 연방검사 주장에 따르면 40년 가까이) 4만 명이 넘는 피해자와 한화 기준 72조 원이 넘는 피해를 입히고 150년 형을 선고받는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아들은 자살과 암으로 사망하고 버나드 메이도프는 2021년 복역 중 사망한다. 버나드 메이도프는 범죄가 밝혀진 후 부인과 동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폰지 사기 방식은 '실제 아무런 이윤 창출 없이 투자자들이 투자한 돈을 이용해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대부분 신규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보통의 정상적인 투자가 보장할 수 없는 고수익을 단기간에 매우 안정적으로 보장해 준다고 광고한다'라고 한다. 평범한 투자로 얻기 힘든 고수익 보장.
시중의 어느 금융 상품도 이 메시지를 내포하지 않은 건 없다. HBO 더 위자드 오브 라이즈에서 메이도프는 옥중 인터뷰 중 시대와 인간의 탐욕을 범죄의 원인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묻지마 범죄의 원인을 인간의 존재로 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메이도프가 저지른 사기의 피해자들은 메이도프와 메이도프라는 명성과 브랜드를 믿고 맡긴 평생의 자산과 병원비, 교육비, 노후 생활비 등을 날렸고 일부는 자살에 이르기도 했다. 7억 달러의 투자를 받고 장기간 혈액 검사 결과를 속였던 테라노스 사태가 떠오르기도 한다. (메이도프 폰지 사기 피해 규모는 650억 달러) 금융 사기 범죄는 다른 범죄와 달리 피해 현장이 제대로 감지되지 않는다. 혈흔이나 부상당한 흔적, 부서진 사물과 집 등의 이미지로 직결되지 않는다. 최근 국내에서 엄청난 규모로 밝혀진 전세 사기처럼.
금융 (투자) 사기를 양가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도 있다. 돈이라는 물리적 실체가 거의 없으면서도 현실 문명의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상을 빼앗기 위해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싶어 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라는 점이 그렇다. 부에 대한 동경과 이런 욕망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엉킨다. 저 사람이 내 몸을 때렸다와 저 사람이 내 돈을 훔쳤다의 차이. 맞은 몸은 직관적이지만 빈 지갑은 다른 감응을 일으킨다. (돈은 인간과 인생의) 거대한 동력원이자 도구지만 마치 전기나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
메이도프가 턴 고객의 지갑은 고객과 메이도프 가족의 자살로 이어졌다. 범죄가 일으킬 수 있는 최악의 피해 결과로써 동일하다. 다만 금융 범죄에 수반되는 가해자들의 정서나 태도가 일반적인 사무실 근로자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범죄와 업무의 구분이 아닌 외형과 태도로 보면 범죄와 일반 업무의 정확한 일치. 일반적인 업무로 보이지만 범죄이고 엄청난 범죄이나 일반 업무로 보이는 것. 가시적 즉각적 물리적인 피해를 일으키는 다른 범죄와 달리 금융 범죄는 일반 금융 업무와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 비가시적인 온라인 네트워크 상의 자본의 흐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관건이라서 그런 걸까. 금융 범죄자조차 실행 과정에서 이걸 진짜 범죄로 인정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발각되기 전까지는 자연스러운 생업의 일부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 금융 사기 범죄는 개인과 가족의 삶과 미래, 사회 시스템을 파괴한다. 회복 불가의 고통과 죽음까지 여기에 포함된다. 메이도프에게 내려진 150년이라는 형량은 상징적이다. 그의 사회복귀를 영구적으로 차단한 선언이며 특권 계급 지위를 완전히 상실시킨 결정이다. 그가 앗아간 수만 명의 생명유지권리, 인생에 비하면 너무 적을 것이다. 피해자 누구도 등가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금융 범죄와 일반 업무의 유사성이 떠오른 건 메이도포의 인터뷰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죄책감 없이 평온해 보였다. 범죄가 밝혀지기 전과 후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도 같은 디자인의 빌딩, 사무실, 책상, 의자, 컴퓨터 근처 어딘가에 이런 자들이 있을 것이다. 무표정으로 숫자를 옮기며 수만 명을 학살하는.
자료 출처
https://www.ebc.com/kr/forex/10725.html
https://ko.wikipedia.org/wiki/%EB%B2%84%EB%82%98%EB%93%9C_%EB%A9%94%EC%9D%B4%EB%8F%84%ED%94%84
https://ko.wikipedia.org/wiki/%ED%8F%B0%EC%A7%80_%EC%82%AC%EA%B8%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