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그린그래스 감독. 로스트 버스
어떤 인간은 자기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동안 자신이 해온 어리석은 선택들이 고스란히 돌아와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는지 모든 순간 고통으로 깨닫는다. 무시하면 될 줄 알았나.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여겼을 때 망나니처럼 지냈고 그 결과 자기가 없으면 금방 죽을 것 같은 노모와 자기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소리 지르는 자길 싫어하는 아들을 돌보며 지긋지긋한 동네에서 죽지 못해 살고 있다. 당장이라도 멈출듯한 거대한 버스를 끌고 다니며. 케빈(매튜 맥커너히)은 제대로 씻지 않아 더러운 얼굴과 꾀죄죄한 옷차림, 깎지 않은 수염 등 피로와 궁핍으로 뒤덮인 몰골을 한 스쿨버스 운전기사다.
낡은 전신주가 건조한 바람을 만나 불꽃이 튀고 순식간에 숲은 불지옥이 된다. 무슨 판타지 액션 장르에서 염력으로 장풍 날리는 소리 같지만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이 산불은 수만 채의 집을 태우며 80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갔다. 오죽하면 화재 진화의 실패를 선언하고 인명 구조에 집중할 것을 선택할 정도였다. 연기가 하늘을 뒤덮으면 아무리 불길이 치솟아도 숲은 밤처럼 변한다. 전신주가 전기 채찍 같은 불꽃을 거리에 쏟아내며 쏟아지고 지옥불 재앙에 정신을 놓고 갈 곳을 잃은 자들이 손에 총을 들고 차량을 빼앗거나 지나가는 아무 차량이나 습격해서 물건을 털고 있다. 차 안에서 사람들이 불타 죽고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집 안에서 불타죽고 있으며 불붙은 병원에서 환자와 의사들이 아비규환의 처지에 이른다.
미뤄둔 버스 정비에 대한 최후통첩도 무시한 채 죽도록 싸웠던 아픈 아들의 약을 사러 집으로 향하던 케빈은 불길 속에 갇힌 아이들을 태워 옮겨야 한다는 구조 신호를 무시하지 못한다. 이 임무에 동의하면 자신과 아들은 영영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을 선택했을까. 자기 아들은 내내 방치했으면서 왜 한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짹짹거리는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 했나. 케빈 자신도 납득하지 못할 일이었다. 자신이 늦으면 화마에 휩싸인 노모와 아들은 죽을 수도 있었는데.
아이들을 겨우 태운 버스는 불길과 불길 사이를 달린다. 천사가 나타나 통째로 들어다가 산을 넘지 않는다. 스무 명이 넘는 그들은 다른 이들처럼 불타는 나무처럼 불타는 하늘처럼 불타는 길과 흙과 공기처럼 같이 불타거나 질식해서 까맣게 그을려 죽을 수 있었다. 사방이 거대한 불길에 휩싸였고 쉼 없이 뚫고 달렸던 버스는 어느 곳으로도 나아갈 수 없었다. 버스는 달궈지고 있었다. 실내는 매퀘한 연기가 자욱해지고 창틀은 뜨거워지고 바닥도 신발을 녹이고 있었다. 티셔츠를 찢어 입을 가려도 얼마나 버틸지 장담할 수 없었다. 밖으로 나아가 점점 가까이 옮겨 붙는 작은 불들을 꺼도 소화기를 몇 번 쓰고 버려도 송곳니 사이 늑대의 혀 같은 불길은 작아지지 않았다. 이대로 모두가 불 속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후회로 가득한 케빈의 삶이었지만 아이들을 구하기로 한 순간부터 달라지고 있었다. 거지 같이 살았지만 거지처럼 죽지 않을 수 있었다. 같이 있어주지 못했던 아들의 어린 날 기억 때문이었나. 케빈은 이이들을 태운 버스를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불 속에 내던질지 언정 나머지를 모두 살려야 했다. 그 과정은 지옥의 멘틀을 뚫고 사망의 핵을 지나 어둠의 동굴 속 멀리 보이는 미지의 영역을 향한 무한의 액셀러레이터였다. 능력도 없이 매달렸던 모든 것을 잃기로 했을 때 주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집을 잃고 가족을 잃었으며 그렇게 화마 속에서 두 번째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종일관 혼란 속에서 집중을 잃지 않았던 다른 책임자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운명을 저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