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줄 알면서도. 이 사랑 통역 되나요?

김선호 고윤정 이 사랑 통역 되나요?

by Glenn

상처 있는 사람은 상처 있는 사람을 알아본다. 알아본 후 그냥 지날 것인지 비릿한 동질감에 성을 내며 시비를 걸 것인지 자기 연민을 전이시키며 사랑에 빠질 것인지가 관건이다. 주호진과 차무희는 그림체는 비슷하지만 사연은 많이 다르다. 주호진(김선호)은 자신의 과거가 아무렇지 않다. 아버지의 둘째 부인의 아들이고 아버지의 첫째 부인의 아들과는 스타일이 다르며 아버지의 첫째 부인이 찍은 (아버지의 둘째 부인이 있는) 가족 사진을 가지고 있어서는 아닐 거다. 값을 따질 수 없는 전 세계 소장품으로 가득 찬 (자기 소유의) 대저택에 살며 한가롭게 드나들고 레인지로버와 디펜더를 세발자전거처럼 몰고 다개국어를 구사하는 재력과 능력이 100% 이유는 아닐 것이다. 98.2% 정도는 되겠지만.


차무희(고윤정)는 친가 쪽 욕망에 의하면 누가 죽일 때 그냥 같이 죽어야 했던 아이였다. 혼자 남아 입양되었으며 살기 위해 눈치 보며 사는 내내 억지로 웃으며 살았다. 남들 앞에서 억지로 웃는 삶이 남들 앞에서 억지로 웃어야 하는 연예인으로 이끌었을까. 차무희는 해외에서 주호진과 마주하고 이후 추락사고로 기절한 사이에 넷플릭스가 낳은 슈퍼 울트라 벼락스타가 된다. 주호진과 차무희는 영화 비포선라이즈 전부터 이어졌던 해외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 잘 되는 커플의 최신 업데이트 버전이었다. 무엇보다 차무희가 주호진에게 미쳐버렸다. 캐나다와 이탈리아를 둘 다 준다고 해도 안 바꿀 듯한 눈빛으로 주호진을 졸졸 따라다닌다. 주호진도 애초 남의 여인을 탐했으나 이제는 자신을 탐하는 차무희에게 억지로 고정된다. 주호진에겐 상처가 없었다. 차무희는 숨쉬는 내내 상처였고. 차무희에겐 주호진 같은 (외모와 매너, 다정함을 고루 갖추며 동시에 자신과 연관 없으면 한없이 냉정한) 사람이 필요했다. 주호진에겐 차무희 100명이 달려와도 필요 없어 보였지만 고윤정과 똑같이 생긴 슈퍼스타가 자꾸 좋아해 주니까 어쩔 도리가 없다. 관광지에서 일도 같이 하고 같은 집에서 말도 같이 하고 고백하고 미워하고 별거 별거 다한다. 심지어 사귀기 전에 이별 전제부터 건다. 마치 결혼 전 이혼 조건 계약하는 헐리웃 커플처럼. 흑화 된 차무희, 도라미 때문에 주호진은 인생 최초의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주호진 같은 사람에게 방향은 매우 중요해서 한번 바뀌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바뀐 방향의 이름이 차무희였다. 주호진이 해마다 일본 가서 청승 떨며 그리워하던 형의 약혼자는 도라미 매니저와 서울에서 작업복 입고 뽀뽀하고 알아서 난리 중이었다.


상처 없는 자가 상처 있는 자를 당길 수 있는가. 애초 둘의 계급은 왕과 관노비와도 같았고 왕이 노비의 애정결핍으로 가득찬 기구한 사연을 경청하고 상처를 중화시켜 준다는데 맺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완전한 자존감으로 채워진 자와 자기혐오와 불안으로 평생을 괴로워하던 자는 메이저리그 에이스의 강속구가 포수의 글로브에 꽂히듯 착착착 합쳐진다. 캐나다의 오로라와 이탈리아의 새벽도시와 어느 일본남성의 과대망상과 방송국 인간들의 고생고생이 둘을 기어이 하나로 이어주고 있었다. 차무희가 절망이 넘쳐흐르는 눈물과 사랑에 빠진 뺨과 눈빛으로 주호진의 등을 가만히 끌어안을 때 사랑해 달라고 애원하며 고백할 때 살면서 이런 부탁을 받아본 적 없는 주호진은 당황하면서도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상처 없는 주호진은 상처 많은 차무희를 끝까지 사랑할 수 없겠지만 고백을 거절하는 법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같은 리듬 안에서 높다란 밤계단을 오를 뿐. 사랑의 조건은 상처가 아니었다. 세상 모든 우연과 비극과 과거와 엇갈림과 기다림과 청승과 유치의 에너지가 둘을 둘에게 밀어 넣고 있었다. 둘은 결국 헤어지겠지만 한 시절의 허둥대던 대화들이 그렇게 낭낭하고 좋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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