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메모들과 행복에 대한 짧은 거짓말

by Glenn

어떤 글은 차마 옮기지 못하고

옮겨지는 것들은 식은 음식과도 같다

제때 넘기지 못해 퍼석한 질감

깊은 허기로만 겨우 씹는 불쾌감

다시 데워도 막 불에서 꺼낸

느낌과는 다른 무너진 조직들


이를테면 수일 수십일 전의 이런 메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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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바람 찬 바람에

제 몸 하나 감싸지 못할까

걱정하는 게 아니라


이 메모를 혼자 읽고 있다면

저는 가고 없겠죠

오래 기다렸는데

오기 어려운 자리였을 거예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아주 오래 기다리다 마침내 연락이 와서

약속을 잡았고 약속 전날

한 사람이 자살한 이야기


자처한 불행

작은 대화들을 더 많이 해야 한다

고마움이 쌓이면 사랑이구나


인정욕구에 대한 갈망은

생존에 대한 집착일 수 있고

끝내 나를 정의하는 마지막 문장에

최후의 마침표를 찍는 건 바로

나여야겠지, 아니 당신

당신이 해주세요


(당신이 내게 준 행복이 너무 커서

당신이 없는 모든 날이 불행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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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다시 새 글


행복은 디폴트가 아니고 행복한 날이 행복했던 날이 되어가면서 행복과 오늘 사이에 거리감이 생긴다 하여 행복 마이너스 행복은 불행이 아닌데 불행이 아니라 제로(무념)에 가까운 상태인데 행복한 날의 자극은 영원히 지속될 거라는 착각을 강력하게 전신과 심연에 주입하고 빠르게 희석되며 다음 행복의 주입을 원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극단적 금단 증상을 느끼고 불행, 자학, 자멸, 절멸 등의 상태를 호소하며 한없이 채워지기를 바라지만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 마치 자기 차의 연료가 가솔린인지 디젤인지 참기름인지 헷갈린다는 듯. 정상성에 대한 밑그림이나 회귀 지점이 없다. 행복에 대한 탐닉이 드러내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 결핍. 비밀스러운 소원을 제대로 표현할 수도 알려줄 수도 없으니 행복이라고 대강 뭉뚱 거리는 집단적 암묵적 합의와 같고 아무도 영원히 타인의 행복을 대신 채워주지 못한다. 누구도 자신의 결핍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원하는 걸 갖는 순간 공허하다면 그건 결핍도 충족도 아니다. 행복의 실현은 예고 없을 때 완성된다. 모든 행복의 난이도가 너무 높거나 기준이 까다로울 필요는 없지만 오래 기억되고 싶다면 재미와 흥미와 반전이 빠질 수 없다. 행복은 어이없거나 느닷없거나 즉흥적이거나 갑작스러울 수 있다. 느린 파도에 휩쓸리는 모래알처럼 곱게 미끄러지며 다가올 수도 있지만 그런 행복은 타인이나 외부에서 출발할 수 없다. 오랫동안 스스로의 내부에 품고 녹여 체온의 일부가 되었을 때 깊고 느린 행복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여기까지 행복에 대해 적은 말은 다 꾸며낸 것들이다. 난 행복을 자주 느끼지만 간절히 원한적은 없다. 애초 원한다고 가질 수 없다고 여겨서. 타인의 행복을 바란 적은 있다. 내가 해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염원이 있다. 행복을 사다 줄 자본과 능력이 없다면 간절히 빌기라도 할 수밖에. 물론 빌어서 알아서 안길 행복 따위 행복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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