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비, 기타노 다케시 비긴즈

기타노 다케시 감독. 하나비

by 백승권




심하게 과묵한 표정에 선글라스를 쓴 형사 니시(기타노 다케시). 아픈 아내(키시모토 가요코)가 있다. 의사는 더 이상의 병원 치료보다 집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는 게 낫다고 조언한다. 함께 살인범을 쫓다가 죽은 동료의 아내가 있다. 종종 찾아가 말없이 생활비를 주곤 한다.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당시, 현장에서 그는 탄환이 다 떨어질 때까지 살인범의 머리에 총을 갈겼다. 그는 아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죄조직에 사채를 끌어다 쓰기도 했었다. 조직원들이 찾아와 그를 보챘고, 말없이 듣던 그는 젓가락을 집어 조직원의 눈에 쑤셔 박았다. 침묵 속에서 벌어지는 찰나의 폭력. 기타노 다케시는 등장하는 거의 모든 영화에서 늘 그래 왔다. 배틀 로얄에서 소리치던 여학생의 이마에 칼을 던져 소란했던 교실을 단숨에 조용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1989년 작, 그 남자 흉폭하다 때도 그랬고, 최근 작 아웃레이지 비욘드에서도 그렇다. 하나비는 1997년 영화다.


영화는 온통 일상의 부조리 만을 모아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퍼즐 같다. 마치 감독이 '난 기존 영화가 그린 인생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라고 항변하듯 예상대로의 전개를 모조리 거부한다. 거부의 방식은 대부분 폭력이다. 건장한 체구의 청년들이 속수무책으로 피를 쏟고, 범죄조직의 내부에서는 작은 농담 하나에도 머리가 깨진다. 폐차장에서 하염없이 조는 여자에게서도, 그런 여자에게 욕을 쏟아부으며 남이 훔친 차를 다시 파는 폐차장 주인에게서도 폭력의 기운은 늘 서려 있다. 양날의 검과 같은 돌출하는 유머감각. 폭력을 통해 분출되는 피와 같이 따뜻하다. 주연배우이자 감독을 맡은 기타노 다케시는 속임수와 부조리 속에서도 유머를 포기하지 않는다. 도리어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영화의 질감을 더욱 두텁게 채운다. 그리고 하나 더 중반을 넘어가며 폭발하는 미학의 극적인 개입.


니시를 대신해 잠복근무를 서다가 총에 맞아 불구가 된 동료가 있었다. 그는 휠체어 신세가 되고 무료함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하고 니시는 그에게 그림도구 세트를 보내준다. 시작되는 점묘화의 향연. 주변의 꽃이 주변인들의 얼굴이 된다. 세밀하고 섬세하게 다뤄지고 배경은 강렬하고 극적으로 표현된다. 영화는 전부터 자연에 대한 미학적 관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도심을 구석으로 밀어내고 푸르른 하늘에 바다처럼 잠겨 있는 멀리멀리 오래오래 보이는 후지산의 꼭대기. 한없이 오래 비추는 바다, 하늘, 눈 덮인 대지. 범죄와 유머와 폭력을 오가던 영화는 폭력과 슬픔에 휩싸인 한 남자의 일대기를 다루는 정형화된 장르에서 벗어나기 위한 차별적 근거를 확보한다.


형사 니시는 은행을 턴다. CCTV가 있든 말든 말없이 권총을 꺼내고 가방을 챙긴다. 범죄조직에 빌린 돈을 갚고 아내와 여행을 떠난다. 태어나 오로지 한 남자만 좋아했을 것 같은 여자는 남자의 과묵함을 애정으로 받아들인다. 실제 니시는 아내에게 다정하다 못해 팔불출에 가까울 지경이다. 시한부를 굳이 감안하지 않더라도 니시의 아내를 향한 순정은 고백 한마디 없이도 풋풋하고 귀여울 정도다. 물론 그는 사진 찍을 때 팔짱도 거부할 정도로 마음의 표현에 서툰 수컷이지만 카드마술로 자기 여자를 한없이 웃길 줄 알고, 케이크를 접시에 담아 가져다주며, 나무로 만든 조각으로 도형을 만들 줄 아는 의외의 자상함으로 그득하다. 그런 그들을 방해하는 무리들. 조직은 그가 갚은 큰돈의 출처를 궁금히 여기며 더 많은 돈을 요구하러 쫓아온다. 그리고 응징. 후두둑 핏물이 땅을 적신다. 다시 만나면 죽여버리겠다고 한 니시는 모든 조직원을 상대로 약속을 지킨다. 차 안은 총성과 핏물로 범벅이 되고 니시는 유유히 걸어와 아내가 있는 해변으로 향한다.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끝의 그림자. 후배 형사가 니시를 체포하러 온다. 니시는 아주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고 다시 아내에게로 간다. 얼마 후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장면이 정지한 듯 흐른다. 암전. 두 발의 총성.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란 책에는 그가 실제 사고로 인해 지금의 안면을 갖게 되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웃는 것도 찡그린 것도 아닌 기묘한 무표정. 그 표정으로 그는 무수한 영화에서 기타노 다케시를 연기했다. 무표정으로 칼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고 이죽거리고 주먹질을 했다. 선글라스로 가려져 있던 눈은 드러났을 때 마치 늑대 같기도 했다. 모두를 잃은 후 상대를 단숨에 부숴버릴 폭력성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읽을 수 없었고 알아버린 후에는 이미 피를 흘리고 있거나 시체가 된 후였다. 하나비는 폭력의 미학이란 수사로 알려진 영화였다. 그 남자 흉폭하다에 이은 범죄영화로 알고 있었고 그저 야쿠자 관련 영화였겠거니 했다. 그리고 예상은 빗나갔다. 가장 폭력적인, 아니 가장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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