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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Sep 26. 2018

디서비디언스, 금기와 해방

세바스찬 렐리오 감독. 디서비디언스






신앙공동체 마을. 아버지가 죽는다. 딸이 돌아온다. 아버지는 추앙받는 사제였고 딸은 방탕한 삶으로 낙인찍혀 출가한 포토그래퍼였다. 동네는 술렁거린다. 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는 발을 들일 자격이 없다는 불문율이 있었고 로닛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로닛은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돌아온 게 아니었다. 마을에서 로닛(레이첼 와이즈)에게 소식을 알린 건 단 한 명이었다. 에스티(레이첼 맥아담스). 아버지의 애제자 도빗(알렉산드로 니볼라)과 결혼한 교사이자, 로닛이 돌아온 이유. 로닛과 에스티는 서로를 끌어안고 입을 맞춘다.


에스티가 로닛을 두고 도빗과 결혼한 건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였다. 보수적인 규율이 장악하고 있는 마을. 어릴 적부터 남자와의 결혼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하는 어른들. 남자와 자는 게 마음의 고통을 덜어줄 거라고 조언하는 종교지도자에게 둘러싸였던 에스티에게 자신에게 끊임없이 헌신과 애정을 쏟아부슨 도빗은 어쩔 수도 없었지만 그리 최악이라고 말할 수 없는 차선책이었다. 로닛과 에스티의 과거를 아는 도빗은 로닛을 경계하지만 24시간 에스티를 구금할 수도 없는 노릇, 에스티의 빗장은 사정없이 풀리고 있었다. 신조차 다시 만난 로닛과 에스티 사이를 가로막을 수 없었다. 


에스티에게 도빗은 안정적인 미래의 지위와 거주를 약속하는 이성적 선택이었고, 로닛은 보장할 수 없지만 거부할 수도 없는 감정과 충동 생애 전부였다. 평생 한 동네에서 같은 규율에 둘러 싸여 자라 온 에스티에게 평화를 깨고 달아나고 싶은 욕망과 그 길을 함께할 연인 로닛이 함께 보였다. 추도식은 다가오고 있었고 불편한 온도차를 느껴온 로닛은 일찍 마을을 떠나려 한다. 로닛과 에스티의 좁혀진 몸과 맘을 마을 사람 모두가 알고 있었다. 도빗은 로닛 아버지를 이을 마을의 차세대 종교 지도자였고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여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한없이 인간적인 욕망으로 에스티를 원했고 로닛은 친구였지만 지금은 사탄과도 같은 방해꾼에 불과했다. 에스티는 선언한다. 이미 로닛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도빗에게 털어놓은 상황, 도빗을 떠나겠다고 말한다. (도빗과의 관계를 통해) 임신을 했고 아이에게마저 자신과 같이 선택권 없는 삶을 주고 싶지 않아서. 


로닛을 마을로 다시 부른 건 에스티였고 그렇게 과거 감정을 폭발시킨 것도 에스티였다. 로닛은 다시 떠날 수 있는 자였고 에스티에게 같이 도망칠 것을 제안한다. 도빗은 규율 앞에 복종하는 사제의 지위와 한 여자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무너질 듯 갈등한다. 그리고 놓아준다. 마치 주인이 고삐를 풀고 초원으로 풀어주듯 만인 앞에서 에스티의 자유를 공표한다. 종교라는 외피를 입은 남성 지배 사회에서 두 여자(게다가 한 명은 돌아온 탕자)가 '금기'의 사랑에 빠지고 사제를 갈등에 빠뜨렸으며 끝내 사제의 아내는 해방에 이르렀다. 에스티에게 로닛은 신의 속박에서 자신을 구출해준 구원자였고, 에스티에게 도닛은 악의 없는 구속자이자 본성을 억압하는 시스템의 중심이었다. 셋은 헤어진다. 각자의 길로 떠난다. 사제는 길을 잃었고 사제의 아내는 사제를 벗어나 새 길을 떠나기로 했으며 돌아온 탕자는 다시 떠났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결국 죽은 자가 (자신의 죽음을 통해) 모두를 바꿔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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