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워크 엠파이어, 탐욕의 역사

스티브 부세미. 보드워크 엠파이어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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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이란 단어로 인간 아니 남성을 설명하기엔 편리하다. 그칠 줄 모르는, 채워지지 않는, 끊임없이 갈망하게 되는 물욕, 성욕, 권력욕. 1920년대 미국 뉴저지 아틀란틱 시티는 그런 욕망에 가득 찬 사내들이 들끓고 있었다. 금주법이 시행되고 여성에게 투표권이 생기며 흑백 인종 간의 갈등이 강렬하게 도드라지던 때 자본과 권력을 쥐고 시장과 정권을 바꾸는 에녹 너키 톰슨(스티브 부세미, 이하 너키)이란 남자가 그 중심에 있었다. 보드워크 엠파이어는 실존했던 너키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과 사건, 시대에 대한 세밀한 서사를 다루고 있다.


너키는 극 중에서 단 한 번도 중심과 정상이며 시작과 끝이 아닌 적이 없었다. 그의 영향력은 마치 윤태호 작가의 '이끼'에서 이장을 연상시켰다. 차이라면 시골구석의 가구 몇 채 안 되는 조그만 마을이 아닌 환락과 범죄가 들끓는 아틀란틱 시티라는 배경과 저지르는 범죄의 스펙트럼. 너키의 '공식' 직함은 회계사였지만 그는 주의 정치와 경제를 뒤흔들었다. 필요한 사람은 끌어들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타인의 손을 빌어 제거했다. 청중을 단숨에 휘어잡을 수 있는 뛰어난 연설가였고, 세련된 매너를 지니고 있었지만 반면엔 돈을 향한 지독한 투지와 고립을 자초하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탐욕을 향한 무서운 추진력이 도사리고 있었다. 도시에서 자본과 권력에 관계된 이라면 누구도 그를 거스를 수 없었다. 직업을 가진 자들은 세금을 내고, 범죄와 정치에 가담한 자들은 그와 악수했다. 함께 웃었지만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상하관계를 떠난 친구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가족 또한 사업영역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말에 불과했다. 너키 톰슨, 그는 철저히 혼자였고 이것의 이점을 단 한 시도 잊지 않았다.


모든 시나리오는 너키를 중심으로 흐른다. 주변인의 캐릭터들 다양하면서도 각각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도드라진 히스토리와 강렬한 캐릭터를 지닌 인물이 바로 너키 톰슨이 어릴 적부터 돌본 제임스 지미 다모디(마이클 피트, 이하 지미)다. 너키 톰슨은 과거 도시의 주요 인사들에게 로비를 위해 향락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그중 50대 재력가에게 갈 곳 없는 10대 소녀를 이어주고 지미는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너키의 후원 아래 프린스턴 대학까지 들어간 지미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격렬한 사건을 겪고 충동적으로 자원입대해 1차 대전을 겪는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 아틀란틱 시티로 돌아온 그는 너키의 수족이 되어 밀주 사업에 뛰어들고 범죄를 저지르지만 결국 둘의 관계는 서로 다른 노선으로 향하게 된다.


참혹했던 전쟁의 상흔이 절뚝거리는 다리와 시도 때도 없이 겪는 악몽의 트라우마로 각인된 지미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행위에만 프로페셔널 한 면을 보일 뿐 힘의 논리로 지배되지 않는 가족관계에서는 균열을 겪는다. 입대 전 임신했던 애인은 둘의 엄마가 되어 있었지만 지미는 그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범죄와 세력다툼의 소용돌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 도시에서 가장 거대한 매춘사업을 하는 인물 밑에서 힘을 키운 지미는 밀주 비즈니스의 규모를 점점 키우고 점점 너키의 영향력을 위협하는 거물이 되어간다. 결국 너키가 과거 자신의 어미에게 한 짓과 그로 인해 자신의 불행이 밀접한 관계를 지녔다는 것을 안 지미는 너키와 공식적인 전쟁을 선포한다.


표면적으로는 너키라는 실존 인물과 지미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벌이는 마피아 범죄 드라마지만 보드워크 엠파이어는 마틴 스콜세지라는 명장을 통해 견고한 스토리텔링과 세밀한 인물과 심리묘사, 관계의 메커니즘을 획득함으로써 어떤 영화에서도 구현하기 힘들었던 장대하고도 농밀한 서사를 보여준다. 특히 지금껏 밴드 오브 브라더스, 퍼시픽 등 탄탄한 자본력과 연출력으로 완성도 높은 시리즈를 보유해온 HBO의 작품답게 한 회 한 회 밀도 높은 시나리오와 긴밀한 대사, 인간과 시대를 관통하는 통렬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성인 남성을 주 타겟층으로 했다는 점이 선명하게 드러날 만큼 폭력묘사의 수위는 리얼함을 더하고, 캐릭터 지위를 막론하고 타락과 위선을 상징하는 선정적인 장면 또한 수위가 상당히 높다.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이라면 시리즈의 말미 지미와 너키의 회복될 수 없는 관계가 절정에 이르는 장면이다. 탄생부터 엉켜있던 자신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도 제대로 풀지 못했던 지미에게는 입대 전부터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의 모든 시간이 끝날 수 없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상처 입은 몸과 영혼으로 돌아온 아틀란틱 시티에서도 살육은 계속되고 있었고 인간과 인간이 갈라서 서로를 피로 물들이는 나날은 결코 끝나지 않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지미가 가장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무기를 가지고 남을 해함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만드는 것이었고, 한치라도 자신에게 모욕을 가한 상대에게는 죽음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지미의 방식이 되어버렸다. 오랜 세월 제련과 관리를 통해 도시의 모든 거래를 지배하는 욕망의 화신이 되어버린 너키와는 달리, 지미의 불안은 해소될 수 없었고 어미와 아비, 그리고 아내에게서 조차 어떤 안정의 품도 찾지 못한 채 어둠과 피에 자신을 투신하게 된다.


너키는 개인이 제어할 수 없는 단점의 소유조차 완벽해 보이는 입체감을 지닌 캐릭터라고 한다면 지미는 태생부터 결여를 지닌 인간적인 매력의 젊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긴 생명력을 부여받지 못한 치명적인 결함이었고 이것은 그에게서 더욱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되었다. 너키가 상처의 흔적을 덮을 만큼 권력의 중앙부에 실재했다면 지미는 외부의 동기나 수동적인 이유에 의해 상황에 자신을 맡기게 되는 캐릭터였다. 그것이 너키를 마지막까지 웃게 했고 지미의 시련을 끝내 해피엔딩으로 맺지 못하게 했다. 처세와 거래에 능한 현실적 인물과 시대와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화적 인물. 이 둘을 마틴 스콜세지의 지휘 아래, 스티브 부세미와 마이클 피트가 경이롭게 연기했다. 서정적이면서도 압도적인 장면으로 넘실대는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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