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웃기네

by 백승권

누군가에겐, 가족 아니고 그들

누군가에겐, 내가 쓸데없이 태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들

누군가에겐, 사라진 존재

누군가에겐, 애증의 대상

누군가에겐, 내가 당연히 아들이겠거니 여겼던 사람들

누군가에겐, 저녁과 밤사이


태어나면서 가족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비극의 시작. 타인은 지옥일 뿐이다. 내가 아닌 존재들이 나를 규정하고 키우고 먹이고 밀가루 반죽 같았던 나를 주물럭 거리며 원하는 형태로 디자인하려 달려든다. 지나가며 한 마디씩 하고 그 한마디 한마디의 대다수는 트라우마로 남는다. 영영 머리 속에서 부유하고 영혼을 압박한다. 나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잘못 태어났어. 나는 환영받지 못했고 원하던 성별도 아니라서 죄책감까지 느껴야 해. 내가 왜,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 때문에 평생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 내가 나라서? 기대에 못 미쳐서? 기대? 나와 합의한 부분인가? 당신들이 기대를 가졌을 때 난 그저 분자에도 못 미치는 개념과 계획에 불과했는데? 나에 대한 계획을 짜며 PPT에 사업계획서 같은 걸 쓰기라도 한 거야? 당신들 누구야? 누군데 나한테 왜 이렇게 함부로 대해? 응? 왜 평생 이렇게 괴롭히고 난리냐고? 내가 이렇게 약하고 악한 거 다 당신들 때문인 거 알아? 머리 크면 징징대는 거 아니라고? 그게 너희들이 내 안의 너희들이 내게 할 소리야? 너희들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가족? 웃기고 자빠졌네.


각자 자신의 가족에 대한 글 곳곳엔 오랜 시간 지나오며 인정하게 된 체념과 머리론 알겠는데 가슴으론 여전히 납득이 안 되는 기억과 경험에 대한 자조가 녹아 있었다. 적막과 침묵, 웃음과 갈채가 흰 벽과 검은 창틀 안에서 울리고 퍼지다 사라졌다. 한 사람의 인생을 몇 줄의 문장과 몇 분의 낭독으로 판단하고 그에 대한 의견과 감상을 돌려주는 일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발화자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고 신중을 기해 이야기해야 하며 동시에 지나침이 지나쳐 부담으로까지 전해지면 또 애매하다. 나를 제외한, <쓴다고 달라지지 않겠지만> 여섯 멤버는 이 어려운 미션을 유연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놀라웠다. 겨우 생애 두 번째 본 사람들인데. 한편으론 애처로웠다. 얼마나 쓰고 또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한편으론 조금 화가 났다. 수십 년의 길을 지나 여기에 잠시 들른 건데, 그동안 만난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안 들어주고 얼마나 자기 이야기만 떠들며 저런 고백들을 묵살해온 걸까. 가장 각인된, 언제든 말할 준비가 된, 태초의 이야기인데.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불행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각자의 거리를 좁히는 게 목적이 아니다. 사교가 목적이었다면 다른 모임도 많았다. 글쓰기는 수단이고 이 수단으로 노크해야 한다, 열어야 한다. 오랫동안 지독하게 닫혀 있던 문, 환상문학을 쓰자는 게 아니라 그동안 열심히도 꾸미고 바꾸고 아닌 척했던 기억과 경험과 이미지들을 다 거두고 깊은 우물 속으로 들어가 나를 건져 올리는 일. 이곳에서 글쓰기는 결국 나를 완전한 타자로 대상화하며 순전한 심정으로 기록하고 남김으로써 내게 이해받지 못했던 나를 돌보는 일이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가장 위대한 횡단을 하는 일이다. 최근의 내가 최초의 내게 말을 거는 일이다. 수백 조각으로 찢겼던 나는 그렇게 회복되어야 한다. 일상은 세계는 그다음이다. 나를 고친다. 이렇게 쓴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겠지. 허나, 쓰기 전의 나와 기어이 써버린 나는 많이 다를 것이다. 표현이 서툴러도 내가 먼저 안다. 숨길 수 없다. 일부의 기록으로 나를 덜어낸 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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