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증오

대상을 가공하려는 시도

by 백승권

완전한 날은 짧다. 착각은 지나간다. 봄은 끝난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견딜만한 적당한 수준의 불편을 지닌 정도의 시간을 보내며 이 정도면 완전하다고 스스로에게 되뇐다. 들리지 않는 혼잣말. 더 좋아하던 대상들이 더 좋아진다. 이 정도의 행복을 원했고 누리고 있으니 괜찮다. 더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시간대가 다가오고 변화를 목도하고 주변의 사물들이 이동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손바닥의 물기처럼 빠져나갈 때, 증오는 다시 실체화된다.


대상이 구체적일 때가 있었다. 숨 쉬면서도 목이 졸렸고 억지로 잠에 들어야 했고 악의 형상이 또렷했다. 많은 고통의 풍경과 울음소리가 좁은 공간 속에 자욱했었다. 다수의 기억 속에 살아 빈번히 회자되는 이미지, 말, 표정. 지금은 그런가. 다르다. 하지만 뭔가 다시 짓누른다. 외압. 다시 살핀다. 생성된 건가. 실체는 있다. 아주 작게. 내가 거기에서 살을 붙여 가상의 존재를 부풀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중압감을 창조하고 반작용으로 증오를 재생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원인은 있다. 증거도, 증인도 얼마든지. 하지만 이게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냐고 하면 절레절레. 그럴 가치가 있을만한 증오는 없다. 증오엔 가치가 없다. 가치가 있어서 증오를 품고 뿜는 게 아니다. 과거의 반복을 거부하고 싶다. 불쾌감과 찝찝함, 자기 검열, 모든 게 귀찮다. 필요 없는, 원하지 않았던 학습. 익숙함, 반응. 가늠한다. 원죄를 찾는다. 기원을 후벼본다. 현재의 나는 내가 만든 게 아니다. 나는 참여했다. 내가 나를 빚어 뇌와 눈, 귀와 피부를 직조한 게 아니다.


악의 축을 한 곳으로 집중하는 것만큼 편리한 일은 없다. 끊임없이 미움을 받을 만한 대상을 정하고 모든 분노와 욕설을 퍼부으면 된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런다고 실질적으로 나아지나. 분노엔 힘이 든다. 증오는 피로한 일이다. 모든 선택은 제살 깎기로 이어진다. 그럴만한 일인가. 아니, 증오엔 가치가 없다. 희망이 목적이라면 다음 플랜이 있어야 한다. 감정 소모만으로는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는다. 결국 나를 원망하겠지. 나의 존재를 비웃으며.


문제는 한 문장으로 쓸 수 없었고 하여 답 또한 맺지 못한다. 다른 안개로 대체되지 않는 한 당분간은 호흡이 불규칙할 것이다. 내게 묻고 타인을 탓하고 내게 다시 망각을 요구하는 일. 비생산적이고 비윤리적이며 비이성적이다. 클리닝 작업은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새로운 적응을 위해 기존의 먼지와 얼룩을 제거하는 일. 이를 위해 작은 수건에 묻는 검정들. 이런 게 닦이나. 대상을 필요 이상으로 키우지 않고 나를 필요 이하로 낮추지 않는 일. 줄타기한다. 상상하며. 증오를 관리한다. 증오를 길들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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