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노답

이탈에 대한 환상은 위험하다

by 백승권

무관심은 돈이 될 수 없다. 수입의 시작은 타인의 관심이다. 타인의 관심과 호감, 인정이 결국 입금으로 연결된다.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지독한 집착으로 이어진다면 스토킹과 범죄일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죄책감을 나누는 방식을 발명했고 익명과 무명 속에서 감정적 이익과 자본적 이익을 나눠가졌다. 관심의 산업화, 소문의 물성화,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과 그 결괏값을 투자 대비 높은 이익으로 취하고 싶은 집단. 외면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제자리가 아닌 퇴화를 촉진한다.


이탈에 대한 환상은 위험하다. 목적지가 없다. 경로가 불분명하고 의지의 결은 고르지 못하다. 감정의 파고가 오르내리고 속도 조절을 외부요인에 맡기게 된다. 결국 주도권을 잃고 수동적으로 바뀔 수밖에. 이런 수순으로 단기적 비전은 외로움을 가중시킨다. 어떤 상황도 나를 중심으로 내 의도대로 돌아갈 리 없다. 현재의 시공간에서 비롯되었던 익숙함과 편안함으로부터 고립된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불안과 불편이 날파리처럼 뺨과 눈가 주변을 윙윙거린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주름을 생성한다.

성취는 예감을 벗어난다. 찬사와 환호는 찰나였다. 사막의 눈사람처럼 소멸된다. 이루고 싶었다는 이뤘는데 어쩔 거야로 바뀐다. 무덤덤해진다. 트로피는 애초 없었다. 미뤄둔 숙제를 겨우 한 장 더 넘겼을 뿐이다. 이조차도 장기적 관심, 단기적 수익을 얻는데 실패한다. 돈을 원했을까. 물론이다. 날린 것도 여전히 얻은 것도 없다. 영혼은 없고 잔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노력의 축적은 생산적 결과와 비례하지 않았다. 방식이 틀렸겠지. 과거의 답습이거나.

정리되지 않는 심정을 정리하려는 글을 시작했지만 네 문단째 요원하다. 더 짧은 출퇴근 거리와 더 많은 월급통장과 더 풍요로운 소비를 추앙하고 있다. 침잠함이 에워싸는 것을 방지하려 휙휙 팔을 둘러보지만 이미 자욱해지고 있다. 어쩌면 가능성이라는 게 지금, 여기일까. 태양을 부릅뜨고 마주하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 보고 있는 걸까. 하루에 몇 분이라도 더 도로시와 조금 더 웃고 떠들고 싶다. 조금 더 비싼 장난감과 많은 동화책을 사주고 싶다. 조금 더 멀고 화려한 리조트, 더 넓고 고급진 호텔로 떠나고 싶다. 이런 것들에 대한 욕망이 타인의 관심으로부터 방치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이런 소박한 바람들을 지탱하기 위한 능력에 대한 관심의 조명이 따갑지 않다. 하여 더 많은 잔고로 환산될 내 무형의 자산들에 대해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산수문제를 곧잘 풀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노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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