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는 얼마나 컸을까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경험이 없으면 아는 게 없다. 기대는 일정량의 지식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지식은 경험에서 비롯되며 결국 경험이 없으면 기대가 없게 된다. 아닐 수도 있다. 내 경우다. 알지 못하는 걸 바탕으로 애써 쌓아 올리려는 기대는 섣부르다. 모래성, 허상, 누구에게도 시작되지 않았을 바람으로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쉽게 기대하지 않는다. 믿지 않는다. 판단하지 않는다. 의심하고 의심한 뒤에 누적되는 상황의 총합을 파악한다. 꿈조차 깨어있던 순간의 일들에서 비롯되는데 기대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근거 없는 낙관이나 절망은 무의미하다. 몸을 낮추겠지만 그뿐이다. 아직 모든 것이 이르다.
이러지 않은 적이 더 많았다. 모든 순간 신중에 신중을 기했을 리 없다. 돌이켜보면 모든 발화점에 관여한 건 나였다. 내가 불을 붙였고 내가 땔감을 날랐으며 자리를 피했다. 의지가 개입했고 믿으려고 애썼다. 내가 옳은 결정을 한 거라고, 실체가 아닌 믿음의 무게로 움직였다. 그런 믿음이 실체를 움직여야 할 때도 있었다. 후회는 타인의 기호다. 선택 후에 후회는 과거의 부정이고, 적어도 내겐 이런 옵션은 없다. 후회는 앞으로도 없다. 버릇이다. 말을 아끼는 상황에 대해 이렇게 머뭇거리며 기록하는 데에는 지금이 기록을 옮길 만큼 충분히 인상적인 시즌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카피라이터의 고백'이라는 타이틀로 연재를 시작했을 때만큼이나, 중력의 변화가 크다. 긍정과 부정을 단정 지을만한 데이터가 없다.
먼 과거에 이미 부정적인 단어를 모두 소모시켰다. 글로 기분을 옮기는 데 특별한 단어가 필요하지 않다. 새로운 거리, 새로운 정류장, 새로운 동선, 새로운 시간대, 새로운 건물들, 새로운, 새로운, 새로운 눈빛과 말투와 분위기, 반응, 상황, 관점, 높이, 웃음과 소리들, 엇나간 것과 더 엇나가는 것들, 정신을 차리는 것과 정신을 잃지 않는 것, 의견을 수집하고 해야 할 것들을 챙기는 것, 일과 일의 영역을 구분하는 것, 놓치지 않거나 놓친 것들을 다시 줍는 것, 서두르지 않고 서두르는 것, 잠을 줄이는 것, 어깨를 희생시키는 것, 버스를 기다리는 일, 집으로 늦게 돌아가는 일, 다시 생각해보는 일, 자연스럽게, 나의 선택지에 대해 떠올려보는 일, 대안이 아닌 다음 경로를 그려보는 일. 같이 갈 수 있는 길과 그렇지 않은 길을 구분하는 일, 헷갈리는 것과 더 헷갈리는 것 사이에서 그저 멈추고 있지는 않는 일, 인정하는 일. 다시 돌아왔다고, 나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분석과 논평보다 해결이 시급한 세계에서는 많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고려하게 한 후에 가장 최소한의 움직임만 시도해야 한다. 가장 빨리 나아지는 일은 가장 빨리 착각하는 일이다. 모든 것에 무감각해지고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며 자연스러움을 가장하고 끄덕이고 같이 웃고 끄덕이고 판단을 보류하고 일단 나아가고 뭔가 가로막는다면 홀로 치우지 않는 것. 불안과 불균형을 인정하는 것, 애초 세상의 모든 각도가 조금은 기울어졌다고 믿는 일, 그리고 그 각도가 기울어진 쪽으로 갈 수 없다면 모든 각도를 내 쪽으로 기울이는 일,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단정 짓지 않는 일, 쉽게 소모되지 않거나 차라리 완전히 소모되어 새로운 껍질을 입는 일, 타인을, 타인을, 타인을 의식하는 일, 나도, 나도, 나도 타인이라는 걸 인정하는 일.
나 같은 타인이 얼마나 힘겨울지 아는 일, 결국 걱정의 대상은 내가 아닌 세계로 향한다. 내가 자라서 결국 내가 되었다는 상황을, 인정한다. 인정한 척이라도 한다. 내가 타인인 세상에서 주변인들은 얼마나 수많은 한숨을 갈아 끼웠을까. 그늘 속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을까. 내가 타인인 세상이 자연스러워지는 날엔 나와 우리는 얼마나 지금과 같을까.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도로시는 얼마나 컸을까. 집값은 올랐을까. 에어컨을 틀고 있을까. 쉬는 날에 SRT를 타봤을까. 여전히 아스팔트 9를 하고 있을까. 새로 산 맥북으로 몇 개의 파일을 만들었을까. 아침에 도로시와 인사할까. 도로시에게 초콜릿과 푸딩, 치즈케이크와 뽀로로 음료수, 바닐라맛 바나나우유와 무지개 사탕, 아이스크림을 사다 줬을까. 첫 문장을 쓸 때 떠올린 마지막 문장과 실제 쓰인 마지막 문장이 완전히 다른 날도 있다. 이번이 그렇다. 요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