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글의 조건이지만, 나쁜 기억이 반드시 좋은 글의 필요조건은 아닐 것이다. 애써 묻어둔 슬픔과 분노를 꺼내 다시 부검해야 돋아나는 글감이라면, 결코 건강한 싹과 든든한 뿌리, 단단한 줄기로 뻣어나가지 못할 것이다. 지난 오랜 기간 동안 슬픔과 분노를 동력 삼아 고철 같은 단어와 문장을 분쇄기에 갈아 돌리듯 쓴 적이 많았다. 지금도 제때 표출하지 못한 감정은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는 칼날처럼 지문 밑에 감춰져 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을 품고 쓴 글들은 유통기한이 짧다. 잠시 그곳으로 데려가지만 그때 심정을 소환하진 않는다. 너무 어두운 기억은 몸이 먼저 지운다. 데이터는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해졌고 그런 기억이 있었다는 흔적만 방명록처럼 남는다. 기억의 정해진 용량은 해로운 자료를 먼저 사멸시킨다. 글이 남는다고 그때로 돌아가지 않는다.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경험과 감정은 차고 넘친다.
망각은 그렇게 변호된다. 같은 글은 두 번 쓰이지 않는다. 감정은 되풀이되지 않고 감정의 해석 역시 그러하며 맥락 역시 그때와 완전히 다르다. 심지어 완벽에 가깝게 똑같은 경험 똑같은 감정을 겪었다 한들, 확인할 길 없다. 원본은 지워졌으니까. 현재의 많은 부분들이 과거를 복제하며 운영되고 있고 망각은 이를 알아서 처리하며 외형을 다듬는다. 지금이 괜찮게 느껴질 때, 새롭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좋을 때, 당혹스러울 정도로 새로운 분노와 절망을 마주할 때 망각은 뒤에 숨어 웃고 있다. 일을 잘 처리했다며 칭찬을 얻고 다시 데이터 센터로 돌아가 기억의 저장장치들을 점검하고 있을 것이다.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겠지만 과거의 어둠이 현재의 선택과 결정, 컨디션과 기분을 간섭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정할 것이다. 아니 그렇게 통제되고 있다고 믿게 만들 것이다. 자신을 지워 전부를 유지한다. 망각은 악성 바이러스가 아닌 온라인 쇼핑 장바구니에 가깝다. 옷장에 새 옷을 채우려면 지금 걸린 옷들을 박스에 담아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해야 한다. 박스가 차에 실려 궁금하지 않은 지역의 어느 아름다운 가게로 떠나는 동안 새로운 기억 새로운 경험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컬러의 옷들이 다시 옷장을 채운다. 새로운 아이템들로 현재의 나를 가린다. 어딘가 맘에 들지 않은 흐물거리는 몸뚱이 일부분이 아닌 이번에 새로 산 옷을 노출한다. 흠을 덮고 지우고 싶은 부분을 숨겼다고 여기게 만든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인식하게 만든다. 나를 위해 나를 속인다.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채워진 채 매일 낯선 나를 마주한다. 부드러운 채찍과 수갑으로 좋아질 때까지 길들인다. 그래 맞아, 나는 앞으로도 망각의 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