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북, 후라이드 치킨 만세

피터 패럴리 감독. 그린 북

by 백승권

로드 매니저와 천재 뮤지션의 우정이라고 부르면 긴장감 없이 들린다. 백인 유흥업소 매니저와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의 로드 무비라고 부르면 조금 낫긴 하다. 백인 남성 이성애자와 흑인 남성 동성애자의 뜻밖의 여정이라고 부르면 오해의 여지가 있다. 백인 유부남과 흑인 싱글남이 만나 친구가 된 이야기라고 해도 말이 되긴 된다. 이탈리아 이민자 집안의 백인 남성과 노예로 차별받는 흑인 남성의 특별한 공감대도 틀리진 않다. 수십 명의 가족과 지인이 있는 백인 남성과 어딜 가도 오직 혼자 남는 흑인 남성의 이야기도 맞다. 뭐라 부르든, 그린 북은 차별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와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는 돈(money)으로 연결된다. 두 아이와 아내가 있는 토니는 오래 일하던 나이트가 영업을 잠정 중단하자 돈이 필요했고, 셜리는 트리오 공연 투어를 떠나기 위해 운전기사와 수행 매니저가 필요했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이지만 백인으로서 미국에 정착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토니는 궂은일을 하지 않는 흑인 셜리를 만나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고용된 사람은 토니였지만 셜리를 흑인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며 신기해한다, 평범한 백인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며 가는 곳마다 환대받는 흑인이라니. 1962년, 링컨이 (1863년 노예 해방 선언으로) 많은 걸 바꿔놓았지만 여전히 흑인은 노예이자, 소작농, 밥도 따로 먹고 잠도 따로 자고 화장실도 백인과 따로 써야 하는 하급 인간 취급을 받는 시대였다. 토니는 혁명가가 아니었고 하루 먹기 살아가며 백인 주류에 자연스럽게 편입된 사람이었다. 셜리는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드높은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지녔지만 피부색에 대한 세상의 차별은 다르지 않았다. 자주 입장을 거부당하고 주먹질을 당했다. 단지 당신이 흑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토니는 셜리의 부당한 대우를 몸으로 반복 체감하며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걸 인식하게 된다. 자기처럼 노력해도 먹고살기 힘든 마당에 존재 자체를 차별당하고 부정당하는 운명이라니. 떠벌리기 좋아하며 폭력을 원하는 자들에게 폭력으로 대응하던 토니는 셜리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셜리 역시 사회적 지위를 활용 유치장에서 토니와 함께 빠져나오기도 한다) 셜리는 토니의 아내를 향한 애틋한 연애편지 쓰는 법을 도와준다. 토니의 아내 돌로레스(린다 카델리니)는 멀리 떠난 남편의 정교하고 세련된 표현이 적힌 편지를 읽으며 감동한다. 토니는 달라지고 있었다. 셜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권 의식에 젖어있던 셜리는 토니를 통해 자신 역시 바뀌어야 할 점이 있음을 깨닫는다. 다른 피부색으로 만난 성인 남성 둘은 오랫동안 같은 차 안에서 대화와 감정을 교류한다. 최소한 둘은 자신만의 기준이 타인의 관점에서는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자각하게 된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라고 인정받아도 어느 순간 완전히 존재를 부정당하는 셜리와 사회적인 지위 없이 먹고살기 바쁘지만 자신만의 완전한 소집단을 가진 토니. 둘은 성별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다르다. 공감대를 이루려면 보통 성적인 조크를 나누며 낄낄 대는 장치가 있을 텐데, 클래식을 전공하고 고귀한 예술가의 영혼을 지닌 셜리에게는 어림도 없다. 셜리는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지위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스스로를 직업적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절대다수를 위한 매너, 절대다수를 위한 말투, 절대다수를 위한 실력까지, 셜리는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흑인으로서 얼마나 드문 지위를 갖췄는지도. 그래서 폭력과 차별을 무릅쓰고 낮은 지위의 흑인이 많은 지역의 공연을 자처한다. 동족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타고난 피부 색깔이 모든 운명과 생애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흑백을 떠나 재능과 노력에 맞는 지위와 대접을 누구든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토니에게 사회란 가족과 지인이 다다. 과거에 어울렸던 주먹세계가 여전히 유혹하지만 토니는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안다. 쉬운 길을 택하는 순간, 가족마저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높은 지위와 인종차별 속에서 외로운 안식을 선택한 셜리와 달리 토니는 어렵고 평범한 방식으로 최소한의 경제권을 획득한다. 미국 사회에서 둘 다 이민자였지만 환경과 목표는 많이 달랐다. 이렇게 다른 둘인데 치킨 뜯다가 하나가 된다.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바삭한 튀김옷을 여기저기 막 흘리고 먹고 뜯어야 꿀맛인 치킨. 치킨을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과 어떻게 사이가 안 좋을 수 있을까. 셜리는 운전기사가 필요했고 토니는 돈이 급했지만 이런 둘을 하나로 만들어준 건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었다. 계급 갈등이든 인종 갈등이든 치킨이 해결했다. 후라이드 치킨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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