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잔소리 듣고 싶은 날3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뭐하려고

by 장안녕


공부를 하고 친구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는 장소가 학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다니며 제도 교육의 지배를 받는 동안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시대는 변해도 왜 여전한 주입식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암기력을 측정하는 수단인 시험 방식도 이상했다. 이것저것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대한민국의 제도 교육을 받고 나면 내 인생에 무엇이 남을까 하는 의구심만 가득 찼다. 또한 정규 수업 외에 보충 수업은 물론 이름만 자율인 야간자율학습까지 이어지니 학교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감옥살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뿐만 아니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간섭도 많이 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교칙 또한 한숨을 쉬게 만들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에는 머릿속에 항상 ‘자퇴’라는 단어를 되뇌었다. 그리고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러자 엄마는 학생이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학교는 다니기 싫은데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남들이 학교 다닐 때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선입견에 부딪히기 일쑤이며 왜 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는지 구구절절 설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따른다. 혹시 일을 한다고 해도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꺼리거나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무언가 뚜렷한 재능이나 목표가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학교에 다지니 않는다고 상황이 달라지거나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 당시 자퇴는 도피나 회피와 같은 말이었다.



결국 자퇴 대신 졸업을 하고 말았다. 또 다시 진학을 하여 학문은 사라지고 취업만을 위해 존재하는 대학교에서 방황과 번민의 시간을 보냈지만 또 졸업을 했다. 지금에야 돌이켜보면 학교를 다녔다기보다는 그저 버텨냈다는 말이 정확한지 모른다. 좋게 생각하면 인내심을 길렀다고 여기고 있다. 또 넓게 생각하면 사회에 나와 직장을 구하고 업무를 수행하며 출, 퇴근을 해야 하는데 학교는 그런 과정을 연습하는 곳이기도 하다.



엄마는 자식이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장래에 지장을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 했으리라 여긴다. 학교를 다니는 일이 고역이었던 자식은 사회에 나와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적응이 어렵다. 그렇지만 30대가 지나니 괜찮아진다. 아니 괜찮은 척을 해본다. 과연 괜찮아지는 날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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