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잔소리 듣고 싶은 날2

등수가 이게 뭐니

by 장안녕


성적표가 나오면 엄마는 자식들에게 묻는다. “이번에는 몇 등 했니?”



공부를 하고 나면 시험을 친다. 그리고 시험결과는 점수와 등수로 표시한다. 등수는 또 내가 학급에서 몇 등을 했는지 전교에서 몇 등을 했는지 등의 방식으로 나뉜다. 어릴 때는 이런 방식에 아주 자연스레 노출되어 있어 별다른 의문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른이 되어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다. 지구상에 대한민국과 일본 등의 아시아 국가에만 석차가 존재한다고 한다.



왜 우리는 만점이 100점일까? 다른 나라들처럼 20점이나 10점이 아니고? 점수 폭이 넓어야 학생들을 일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기 쉽기 때문이다. 유럽의 학생들은 가령 12점(20점 만점)이상을 받으면 그 시험 영역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한다. 대학은 평준화되어 있고 고등학교까지 학생들에게 석차나 등급을 주지 않고 합격/불합격 기준으로 절대평가만 하기 때문이다. 10점이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점수이므로 12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학생은 그 시험 영역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 (중략) 우리 학생들은 88점이 아니라 99점, 심지어 100점을 받아도 그 시험 영역을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한다. 한 등수라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1등을 하고 1등을 끝까지 지킬 때까지. 모든 학생이 모든 과목의 모든 시험 영역에서 끝까지 해방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홍세화, 「생각의 좌표」-



시험을 치고 석차를 매기는 행위는 매우 잔인한 일이었다. 숫자를 좋아하는 어른들이 효율적으로 학생의 성적을 관리하기 쉬운 방법은 석차를 매기는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석차는 과연 개개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공부를 통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를 파악하는데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시험의 결과로 나오는 석차는 내가 누구를 이겼는지 등의 불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여 이기적인 방향으로의 경쟁만 자극할 뿐이다.



그동안 시험을 치고 나면 몇 등을 했는지 물어볼 경우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옆집의 누구, 엄마가 아는 누구는 왜 그렇게도 항상 1등만 하는지 참 얄밉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다닐 때의 1등은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지금의 나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이다.



* 자식들이 등수 때문에 시달릴 때 아빠는 월급 때문에 괴로웠다. ‘어느 집 남편은 얼마를 버는데 당신은 이게 뭐냐?’ 잔소리를 하는 만큼 자식의 등수와 남편의 월급이 올라간다면 좋으련만. 지금에서 생각해보니 잔소리를 했던 엄마들의 마음도 오죽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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