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본분은 공부이다.” 엄마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언젠가 한 번 나는 엄마한테 “공부는 왜 해야 하는데?"라고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답을 일러주었다. "사람 대접 받고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공부해야지.”
냉정하고도 씁쓸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사람이 어느 대학교 출신인지 어느 직장에 다니는지를 은연중에나 대놓고 따진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엄마들은 자식에게 공부하라며 잔소리를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슬프게도 공부를 좋아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부모님들의 대다수도 어린 시절에는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공부는 상급 학교 진학과 취직을 위해 아주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공부도 좋아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제도 교육 안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긴다. 우리나라에서 공부는 시험을 위한 공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험 : 상상력을 억누르는 공부, 그래서 생각의 균질을 초래하는 공부, 그래서 새로운 답의 싹을 잘라버리는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아보는 시간. [동의어] 실험 :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끝없이 반복되고 있는 집단의식. 실험도구는 몇 자루의 펜과 그 펜 끝에 매달린 우리 아이들. -정철, 「불법사전」-
상상력을 억누르고 생각의 균질을 초래하며 새로운 답의 싹을 잘라버리는 공부만 해오다보니 진정한 공부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해본 적이 있다. 개인마다 내리는 정의는 다르겠지만 진정한 공부는 먼저 나를 알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알지 못하는 공부는 헛된 공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수십 년 넘게 공부를 하지만 자신에 대해 잘 몰라 그제야 방황을 시작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면 인생의 모든 분야가 술술 해결되고 창창한 앞날이 펼쳐진다는 교묘한 이야기에 속으며 자란다. 하지만 공부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끊임없는 회의감과 허무함이 몰아닥친다. 10대 시절에 충분히 자아와 진로 탐색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로지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과목 공부만 허락할 뿐이다. 그래서 자아와 진로탐색은 20대나 30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퇴, 퇴사 문제로 이어진다.
예전에는 청소년 시절에 충분히 자아와 진로 탐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억울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라도 나를 알아가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지금의 순간도 고맙게 여긴다. 그 이유는 어차피 나를 알아가는 공부는 평생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 장차 대한민국의 앞날을 이끌 아이들에게는 일찍부터 많은 시간을 자아와 진로 탐색을 위해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더불어 상상력을 키우고 생각의 균형을 잡으며 새로운 답의 싹이 올라오는 공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