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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Aug 13. 2020

우리 사이에 무슨 비밀이야

도대체 나한테 뭘 숨기고 싶은 건데

 7월 21일 수요일, 결혼 D-142



 블로그를 한때 운영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돈을 벌고 싶다거나 뭐 다른 목적 같은 건 없었고 그냥 뭔가 일상을 날아가지 않게 기록하고는 싶은데 종이는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블로그에 그날그날 했던 일들, 이번 주말에 갔던 곳들을 정리하면서 올려두면 뭔가 큰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블로그는 당연히 호떡에게도 공개되어 있었고, 가끔은 호떡이 댓글도 달곤 했다. 마치 제3자의 블로그를 구경하다 단 것처럼 장난 섞인 댓글들.


 그날은 호떡과 통화하던 중 그의 블로그 개설 계획에 대해 들은 날이었다. 내가 하는 거 보니까 재미있어 보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까지는 끄덕이며 들었는데 아니 글쎄 ‘블로그를 비밀로 운영할 것’이라는 것이다! 내 블로그는 알면서 넌 왜 비밀로?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 올라서 입을 댓발은 내밀고서 넌 내 거 알면서 나는 왜 네 블로그가 어딘지도 몰라야 하냐고 볼멘소리를 했더니 여튼 안 된단다. 서운한 척을 좀 하면 금세 풀어져서는 계획을 철회할 줄 알았는데, 호떡의 반응은 점점 더 서운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본인이 블로그를 하면서 여자를 만나는 것도 아니고 혼자 블로그를 한다는데 왜 이렇게 난리냐고 했다! ‘여자 만나는 것도 아니고’의 대목에서는 A문고 사건이 생각나면서, 와 진짜 나한테 이래도 돼? 서운한 척을 하려던 거였는데 점점 눈물이 차오르더니 울컥 눈물이 흘러버렸다. 내가 우는 것 같으니까 왜 그러냐고 대답을 재촉하는 말을 몇 번 하는데, 원래 사람이 울 때 누가 뭐라고 하면 더 울게 되는 법. 잘 진정이 되지 않아 목을 가다듬고 있는데 대답이 늦어지는 동안 또 화가 잔뜩 나버린 호떡은 나를 다그치다가 화가 저 끝까지 나버렸다. 이게 울 일이냐며.


 ‘울 일’이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하는데, 운다는 것은 오로지 우는 사람 몫이기 때문이다. 울지 않는 남이 이게 울 일이니 아니니 판단할 게 아닌 것이다. 그 ‘울 일’이라는 단어에 또 발작 버튼이 제대로 눌린 나는 울 일이 네 판단으로 결정될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또 반박 당하면서 그날 밤을 다 날려 보냈다.


 울다가 잠들면 아주 숙면을 하는데, 다음날 오전에 깨서는 또 어제의 서운함에 한참 동안을 씩씩대다가 9시 39분 도착한 호떡의 종전 선언에 마음을 풀기로 했다.


 ― 나 출장 왔어

     어제 일로 기분 아직도 안 좋을 텐데

     기분 풀고 편안한 하루 보내

     너가 너무 안 좋게 느낄 만큼

     세게 얘기해서 미안해


 뒤이어 고백했다. 어제 그렇게 지랄 맞게 굴던 나의 모습은 호르몬 탓이 일부(사실은 아주 많이) 있었음을. 월간피바다를 앞두고는 늘 그렇게 호르몬 난립으로 용천지랄을 하고야 마는데, 간밤의 일도 아마 호르몬이 화를 더 부추겼던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분명히 해두었다. 내가 호르몬 지랄 때문만으로 그렇게 된 것은 절대 아니고, 나에게 과하게 거칠고 세게 얘기하는 태도가 마음을 상하게 했던 건 분명하다고.


 그리고 그놈의 비밀 블로근지 공개 블로근지 뭔지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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