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편에 그 사람이 있는 횡단보도 앞에 서면 보여요
지하철역의 끝이 없어 보이는 계단 길을 힘겹게 따라 오르고, 숨을 미처 고르지 못한 채로 터덜터덜 걷는다. 오늘따라 사람들도 다 지쳐 보이기만 한다. 나도 지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집까지 이어지는 칠팔 분 채 되지 않는 길을 무심하게 따라 걸으며, 마지막으로 건너야 할 횡단보도 앞에 멎는다. 신호가 아직 빨간 불이니 횡단보도 끄트머리에 사람들 발이 이렇게 많이 매여 있겠지?
무심하게 빨간 불일 거라고 당연스레 짐작하고 있는 횡단보도 신호등을 본다. 빨간색이다. 신호등으로 향했던 시선을 천천히 거둔다. 거두는 시선에 호떡의 웃음기 어린 얼굴이 걸린다.
나도 같이 씩, 웃는다.
3천여 일을 만나고 사랑해 왔어도, 여전히 숨이 순간적으로 멎을 만큼 좋은 몇 안 되는 장면.
사랑이, 눈에 조금 보이는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