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노래방 좀 가지 마
5월 27일 금요일, 결혼 D-197
안 갔으면 하는 장소 중 상위권에 꼭 들어갈 법한 장소는 바로 ‘회식 때의 노래방’이다. 남초 회사에서의 노래방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도대체 이 나라 회사들의 영업이 왜 노래방 안에서 일어나야만 하는지, 사람들 간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장소로 왜 노래방이 선택되어야 하는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가기 싫은데 억지로 끌려가듯 가야 하는 마음을 아냐며 항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가기 싫으면 안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드는 건 내가 여자로서 남자들의 세계에 가지고 있는 어쩔 수 없는 나이브함 때문일까.
6시를 조금 넘겨 회식 전에 목소리 들으려고 전화를 했다고 했다. 부대찌개를 먹는다고 했고, 8시까지도 여전히 먹고 있는 중이라고 했고, 9시 30분을 조금 넘겨서는 편의점으로 담배를 사러 나가는 선배를 따라 잠시 나왔다고 했다가, 10시 30분을 넘겨 내가 메시지를 보낼 때까지는 감감무소식이었던 호떡이 겨우 20분 만에 한 대답은 노래방에 와서 ‘잘못된 만남’을 불렀다는 말이었다. ‘잘못된 만남’? ‘잘못된 방문’이 맞는 표현 아닐까. 너희 회사는 노래방을 안 가면 회식이라는 게 되지를 않니?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잘못된 만남을 불렀다던 호떡의 연락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잠을 깨우는 호떡의 전화 벨소리에 눈을 간신히 떠서 몇 마디를 하려고 했는데, 아무 말로도 대답해주고 싶은 욕구가 생기질 않았다. 여섯 시간 이상을 회식에 쏟아야 하는 이유가 뭔지도 모르겠고, 노래방을 꼭 왜 가야만 하는지도 도저히 모르겠다! 조금 더 깊숙이 생각해보면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갔다는 그 노래방*이 불순한 목적이 아예 없는 노래방인지는 나는 죽었다 깨나도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다음날 일어나서 호떡은 나라고 가고 싶어서 갔겠느냐며, 제발 화 좀 내지 말라고 했다. 간밤의 화를 제대로 누르지 못하며 부들거리는 나에게 호떡은 ‘때려치우고 싶다고 그래도 맨날 그러지 말라더니!’**라는 말로 역공을 가하는 도발까지 선보였다.
뭐, 술에 취하고서 노래방만 가면 같은 노래를 세 번씩 부르는 주사가 있는 내가 하기엔 조금 머쓱한 말이지만 제발 노래방 좀 가지 마. 제발 좀.
* 호떡은 참고로 그런 불순한 노래방엔 발 들여놓은 적 없다고 한다. (1쇄 초판에 아무 말도 안 하고 이렇게 써놓으면 사람들이 본인이 그런 노래방 간 줄 알 거 아니냐고 잔소리를 오지게 해서 한 줄 써드림)
** 노래방 가게 하던 그 회사를 결국 관두긴 관뒀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