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7개월 전인데 퇴사를 한다고?
4월 23일 토요일, 결혼 D-231
결혼을 2016년 12월에 하기로 정해둔 시점은 호떡이 3개월의 인턴 생활을 갓 마치고 정규직에 막 전환된 때였다. 자동차 부품 쪽 외국계 회사였는데, 일단 분야 자체를 마음에 들어했다. 자동차에 워낙 관심이 많았고, 그 안에 어떤 부품들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일을 하면서 같이 배울 수도 있다며 가끔은 일하는 와중에 ‘일하면서 필요해서 뭘 찾아보고 있는 중인데 재밌다’는 이해 안 갈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기술영업이라는 낯선 직무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선 꼰대 같은 상사가 성격도 지랄 맞아서는 도저히 맞춰주기 힘든 사람이었고, 잦은 술자리와 접대 자리도 썩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이 잦았다. 나름 회사생활 선배였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나 조언은 그저 ‘돈 벌기가 원래 그렇게 더럽고 힘들어’, ‘어딜 가나 그 정도 짜증 나는 일들과 그 정도 더러운 상사는 한 명쯤 꼭 만나게 될 거야’라는 듣기 좋을 리 없는 현실주의밖에는 안 되었다.
나 말고, 비슷한 취업 준비생 또는 이미 필드에서 일을 하고 있는 다른 직무 사람들이 보면 어떤 말을 남겨줄지 궁금했던 호떡은 모 취업 카페에 글을 올렸다. 신상을 유추할 수 있을 만한 치명적인 정보들은 말하지 않은 채로, 이러저러해서 너무 힘이 드는데 이때 님들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시겠냐고. 역시나 ‘직장 구하기 어렵습니다’, ‘밖은 지옥입니다’, ‘재취업하기가 너무 힘이 드니 신중하게 잘 생각하라’는 댓글들만 달리기에 보다 말고 글을 삭제해버렸다고 했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사는 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데, 하는 호떡에게 해줄 말이 달리 떠오르질 않았다.
― 네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게 어떤 건데
― 내가 열심히 일하면 성과가 나오고
저녁이 있는 삶
너랑 같이 저녁을 먹는 삶
낮에는 열심히 피땀 흘려가며 일하고
내가 열심히 일하면 성과가 나오고
풍족하진 않아도
적당히 잘 먹고 돈 걱정 없이 사는 거
부자는 아니어도 돈 걱정 안 하고
너랑 주말에 쇼핑도 하고
저녁엔 밥 먹고 영화 볼 정도의
기력은 있는 삶
지금처럼 부장 과장 눈치 보고
사수 눈치 보고 회사에서 약간
소외된 느낌이 아니라
내가 주가 되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열심히 하고 싶어서 하는 거
너무 소박해서 얼핏 눈물이라도 흐를 것만 같은 소망이 와다다 올라가는 핸드폰 스크린 앞에서 고작 할 수 있는 얘기가 나랑은 또 다른 고민이네,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 그렇게 무력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나는 무력하고, 호떡은 지나치게 무던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시대가 어느 땐데 신입 사원들을 모아다 장기자랑 같은 걸 시키는 회사에서, 회식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곳에서, 미움받을 용기가 있고 하기 싫다, 저녁 회식 안 가겠다 말을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말하면 조직 분위기도 해칠뿐더러 스스로에게도 피해가 오고 나아가 가족의 생계에 문제가 생기게 될 수 있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본인 혼자라면 얼마든지 힘들어하고 말 수 있더라도 본인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는 일은 많이 부담스러웠던가 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일을 떠나서 본인이 다니는 회사가 다니고 싶은 좋은 회사는 아니라는 것인데, 돈 때문에 또는 결혼해야 하기 때문에 다니기 싫은 곳을 끌려가듯 다녀야 하냐는 것이 호떡의 질문이었다. 숨이 콱 막혀왔다. 결혼을 약 7개월 정도 앞두고 듣기에는 다소 난도가 높은 질문이었다. 역으로 내가 지금 누가 보기에도 멀쩡한 내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간다면 넌 어떻겠느냐 물었는데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있다면 돈을 조금 덜 벌더라도 조금 빠듯하게 살아야 한다 하더라도 응원해줄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말이야 쉽지’가 엄지 끝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그렇게 말하진 못했다.
― 그니까 나는 지금이 덜 행복하니까
그만하고 싶다고 얘기하잖아
왜 내가 정작 필요할 때 응원 안 해줘
‘취준’이라는 것을 만 1년을 꼭 채워 한 나에 비해, 전역하자마자 바로 취직해버린 탓에 이렇게 불안함의 무게가 다를까. 의문을 갖는 내게 전역하고 아무런 여유도 없이 가족들이 힘든 일을 겪는 중에 괴로워하며 바로 취업을 해버렸던 것이, 그렇게 후회된다고 했다. 내가 결혼하자고 말해버린 게 호떡의 앞날을 콱 잡아버리고 있는 건가. 마음이 아득해졌다가 고장 난 형광등처럼 점멸하는 현실의 번쩍임에 눈을 뜨다가를 반복했다.
내가 발목을 잡는다는 생각보다 응원해주지 않는 내가 서운하다는 호떡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진부해서 죽어버리고 싶은 미안하다는 말뿐. 하지만 당장 둘이 모아 온 돈으로는, 부모님의 도움 따위 없이 이 각박한 서울 땅에서 일어서기엔 턱없이 부족한 걸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직장 그만두고 싶다는 소리를 무한 긍정의 자세로 들어줄 만큼의 관대한 성품도 내겐 없는 모양이었다.
― 지금 당장 내가 불행한데
대출을 위해서 다니라는 거야?
네가 지금 두 사람 몫을 할 수 없으니
돈 없는 나를 응원할 수 없다?
진짜 갈수록 서운한 말만 쏟아내네
― 아니, 난 네가 나랑
같이 살 의지가 없다고 느껴져
나도 그게 서운해
당장이라도 같이 살고 싶고, 물 한 잔 떠놓고라도 결혼할 수는 있다, 가 호떡의 변론이었다. 직장을 아예 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 이 직장이 너무 괴로우니 그만두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 의견을 물었을 뿐, 내 삶에 빌붙어 살듯이 살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아니라고. 그리고 내가 평생 돈을 못 번다고 해도 어떻게든 벌어 둘이 먹고살 만큼은 해낼 수 있다고도 했다. 당장 불행에 몸서리치는 본인에게 결혼은? 대출은? 이러는 내가 너무너무 서운하다고. 부모님께는 차마 걱정하고 서운해하실까 말도 꺼내지 못해 겨우 내게 꺼내놓는 본인의 불안을 요만큼도 이해하지 못한 채 현실의 벽으로 밀어붙이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가장 믿고 사랑하는, 평생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그러는 게 더 심한 상처가 된다는 메시지도 연이어 화면에 떴다.
나도 불안해, 나도 너무 불안하다고. 퇴사희망자와 퇴사만류자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부모님보다 지금은 더 제일인 나라는 존재가 불행의 구덩이로 등을 떠밀고 있다고 푸념하는 퇴사 희망자와, 날짜는 잡혔고 진행된 것도 남은 것도 많은 와중에 자꾸 직장 관두고 싶다는 남자친구와 당장 살 집도 마련돼 있지 않은 퇴사 만류자.
앞서 언급한 그런 현실적인 면 때문에 평생의 반려자가 될 남자친구에게 정신적인 의지도 되어주지 못한다는 데에 대한 죄책감과, 결혼을 앞두고 꼭 이렇게 날 불안하게 해야 할까 하는 마음에서 둥둥 떠오르는 원망.
― 죄책감이 드는 중에도 일관되게
응원 안 해주는 쪽을 택하는구나, 너는
정말 무서운 면이네 어떻게 보면
― 너도 책임감 없어 보여,
엄청난 이상주의자 같아
상처만 남긴 채 끝난 대화는 결국 이 문제는 알아서 결정하겠다는 호떡의 말에 이은 내 대답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 네가 주는 불안까지 내 행복일 순 없어
그건 너를 믿고 지지하고 사랑하고와는
다른 문제야
진짜 힘들었지? 이렇게 현실적인 나여서 미안했어. 그렇지만 정말 너를 믿고 지지하고 사랑하고와는 다른 문제였어.
그렇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아직도 많이 미안해.
정말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