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결혼식이 우당탕탕일 줄이야
Chapter 2. 나 임우유는 이호떡을 남편으로 맞아
12월 10일 토요일, 결혼 D-DAY
전날도 정신 못 차리고 뭔가 자극적인 것을 찾아먹었던 기억이 난다. 결혼식 전날이라고 뭐 별 거 있나. 그냥 12월 9일 금요일이었다. 다음날은 엄청나게 이른 시간에 일어나야 할 운명이었는데, 막상 또 잠에 들려니 거사(!)를 앞두고 너무 쉽게 잠에 드는 게 스스로 용서가 되지 않았다. 호떡과는 결혼 전 2개월 정도를 이미 같이 사는 중이었기에 옆에는 내일이면 남편이 될 호떡이 누워있었다. 네가 내일이면 내 남편이라는 게 되는구나. 어둠 속에서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호떡의 얼굴을 바라보며 실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내일 화장은 잘 될까? 지난번에 촬영할 때는 눈썹을 짝짝이로 그려 놓아서 사람 심란하게 했는데, 설마 본식 날도 그러는 건 아니겠지. 신혼여행으로는 하와이를 갈 건데, 하와이 가는 비행기 타는 시간이 너무 빠듯해. 설마 비행기 놓치는 거 아냐? 비행기 놓치면 진짜 끝장인데.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이동해야겠다. 면세품 받을 시간도 없겠다, 하는 생각들. 굳이 전날 밤 하지 않아도 크게 달라질 것 없는 걱정들을 늘어놓으며 시간이 지나고 눈이 감기기를 기다렸다.
당일의 기억은, 추웠던 기억. 엄청 추운 날씨에 와줄 하객들에 대한 염려를 조금 하며 메이크업을 받을 곳으로 이동했다. 눈을 감고 화장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눈을 떴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당일도 눈썹을 짝짝이로 그려주었다! 셀카를 찍어본 뒤 정말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호떡에게도 보여주었는데 다행히 호떡도 짝짝이로 그려졌다는 데 공감했다. 메이크업해주시는 분에게 사진을 보여드리며 눈썹이 양쪽이 다르다고 하며 속으로 대칭이 맞게 잘 그렸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까 봐 조마조마했으나 ‘본식 파워’ 같은 게 생긴 것인지, 다시 수정화장을 해줬다.
신부대기실이라는 곳만큼 이상한 곳은 없다는 걸 왜 결혼하는 그 날까지도 난 알지 못했나. 누가 어떤 모습으로 와서 어떻게 인사를 나누는지에 대한 기억보다는 구경꾼처럼 저 멀리서 나를 체크해보듯 두리번거리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는 곳. 결혼하는 신부에게 기대되는 다소곳함 같은 건 집어치우고 옆에 앉아 사진 한 방 찍어보라고 소파 빈 곳을 툭툭 두드리던 내 모습은 다소 껄렁했다. 찾아와 준 사람들과 사진 한 번씩 찍다 보니 어느덧 입장이 코앞.
내가 결혼한 곳은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곳이었다. 호떡의 손을 잡고, 어쩐지 무게감이 남다른 부케를 들고 초조하게 식전 영상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우리를 아끼는 것으로 추정되는 대학교 때 인연인 선생님이 직접 만들어 주신 식전 영상에서 뒤통수를 맞을 줄은 그땐 정말 몰랐지.
우리의 식전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재생돼야 하는 곡은 에드 시런Ed Sheeran의 〈Lego House〉였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제대로 된 전주가 나오고 있는데 귓가에 때려 박히는 사운드는 생각지도 못한 영화 러브 액추얼리의 사운드 트랙 〈Love Is All You Need〉.
러~브, 러~브, 러~브. 단언컨대 차라리 청각을 잃고 싶은 순간이었다. 분명히 식전엔 영상을 음소거하고 아무 플레이리스트나 재생하고 본식 때는 원래 영상 사운드로 재생해줄 것을 호떡이 분명 당부했다고 했는데, 본식 때도 아무 곡이나 얹어서 재생해버리다니! 저기요, 저는 결혼식 한 번 할 거라고요! 울화가 치밀어올라 식장의 아무 관계자의 멱살이라도 잡아버릴 것 같이 분기탱천한 나를 역시나 한껏 당황해 있던 호떡이 간신히 억눌러주던 기억.
식이 끝나고선, 글쎄. 스튜디오 촬영하던 날 입었던 한복을 전날 꺼내서 다려두지도 않은 채 용감하게 박스째 들고 와버린 탓에 상자 속에 꼬깃꼬깃 주름이 멋대로 져버린 한복을 꺼내 입고 부끄러운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여기저기 가서 고개를 숙이며 감사인사를 건넸다. 엄마는 전날 다려두지 않은 한복을 입고 창피하게 이게 무슨 일이냐며 내 등허리를 쳐대고, 나는 그럼 어쩌냐고 볼멘소리를 했지.
그 한복 입고 폐백실을 들어가다가 우당탕탕 넘어지기까지 해서 뭇 하객들의 걱정을 한 몸에 사기도 했다. 다행히 엉덩이에 살이 많이 붙어있던 덕에 멍 하나 들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다.
사회자로 섭외했던 친구가 웃긴 친구여서 식 내내 하객들이 깔깔거리고 웃던 기억, 엄마 앞에서 애교를 부리며 식장을 뛰어다녔던 호떡, 아들을 보내는 게 못내 서운하셔서 축사를 하시다 말고 크게 울컥하셨던 어머님의 울음기 서린 목소리, 그걸 보고 눈물이 왈칵 차올라 곤란했던 내 눈시울. 폐백의 종료와 함께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웨딩카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며 속눈썹을 떼고 기십 개는 족히 박혀있던 실핀을 제거하던 나…….
주위의 우려와는 다르게 제법 여유 있게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면세품도 인도받고, 허기진 배를 햄버거 따위로 때웠다. 클렌징 티슈를 꺼내 혼잡한 공항 화장실에서 두껍게 얹힌 메이크업을 지우고, 이내 탑승한 비행기에서 볼만하게 처절한 몰골로 곯아떨어지면서 우리의 결혼식 날은 저물었다.
하와이에선 그곳의 기후만큼이나 꿈같고 따스한 신혼여행을 보냈더랬다. 결혼식만 우당탕탕일 줄 알았지, 결혼생활은 더 큰 우당탕탕 퍼레이드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