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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Dec 06. 2021

대세와 소세

나이 서른셋이 되며 먹는 감정의 서른세 끼
#오기



대세와

소세


 언제 헤어져도 아쉬운 것 없는 사람들과 일해 온 날들이 더 많긴 하지만, 많이 혼나면서도 좋아했던 과장님이 있었다. 어딘가 보수적이면서도 유연한 구석이 있고, 감정을 숨기기보다는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시던. 화끈한 성격이셨던 과장님은 뭘 하더라도 사소한 디테일까지 신경 쓰는 나를 유달리 답답해하셨는데, 그때마다 ‘일단 해, 대세에 지장 없어’라고 일갈하곤 하셨다.


 대부분의 일들은 정말 대세를 거스르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수신인이 몇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보낼 메일에 구두점이 찍혀있지 않은 문장이 있건 없건, 메일을 열어보는 사람들의 수는 늘 일정했다. 메일을 열고 거기에 온점이 찍히지 않은 문장이 있는지 없는지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하는 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깨친 것이라면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이었고, 그 사실은 매번 사실로서 존재했다. 가끔 우당탕탕스러운 문구를 써서 수십 통의 타박성 메일을 받는 적도 있었지만, 그건 그야말로 어떠한 대세를 거슬렀기 때문일 터였다.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구두점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내가. 주술호응이 되지 않는 문장이나 명백히 틀린 맞춤법, 끝점이 틀어진 디자인 같은 것들이 자꾸만 보이는 내 눈이. 다른 사람들은 저 멀리 거시적으로 바라보며 숲을 매만지고 있는데, 나 혼자 나무 밑동에서 풀이나 뽑느라 앞으로 몇 발자국 내딛지도 못하고 내내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건 아닌지 싶어서.


 코로나가 덮치기 전에 들렀던 보석 같은 여행지 중엔 런던도 있었다. 예술에 대한 빈약한 조예에도 내셔널 갤러리 같은 굵직한 미술관에는 들러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인파 사이에서 여러 그림들을 지나치다 눈을 사로잡는 그림 앞에 이끌리듯 멈춰 섰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 확인한 화가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몽환적이면서 섬세한 여인의 초상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림 전체적으로도 인상적이었지만 특히나 여인의 가슴 쪽에 그려진, 커다란 보석 펜던트의 표현이 그랬다. 어떻게 저런 식으로 보석의 광채를 표현할 수 있는지, 저것이야말로 눈부신 디테일이라고 감탄하며 생각했다. 저 작은 디테일 없이는 이만큼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했을 리 없다고.


Gustav Klimt, Portrait of Hermine Gallia (1904)


 그날 클림트의 작품을 보며 알게 된 건 시시하게도 생긴 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 대세를 따르며 큰 파도에 맞춰 크게 몸을 움직여 멀리 가든, 밀물의 완만한 물살에 발을 담갔다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잠시 행복해지든,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대로 가치를 발견하게 되니까. 타인이 재단해 줄 수도 없고, 쓸모로만 설명되지도 않는 나의 의미나 가치에 지나친 기준을 부여해 괴로워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생애 발견할 수 있는 많은 이벤트들을, 순간들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고 기록할지는 결국 펜을 쥔 사람의 몫이다. 나는 클림트의 그림 속 보석 펜던트처럼 가까이서 보아야 겨우 보이는 마술 같은 표현들을 조금 더 길게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미련한 사람의 고집스러운 오기에 그친다 해도. 몇 걸음 더 멀리서 다시 보는 그림 속의 펜던트가 반짝, 하고 빛나는 영롱한 순간도 가까이서 그걸 오래도록 바라본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보람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대세는 소세小勢 없이 존재할 수 있는지, 정말 대세만이 의미를 갖는 것인지 하는 고민의 염도도 싱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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